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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의 기록/뜨리의 슬기로운 OTT 라이프

영화 : 돈 룩 업 (뜨리의 슬기로운 넷플생활)

by 구루퉁 2022. 1. 10.

이 시대의 진정한 호러 서스펜스,
영화 <돈 룩 업>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호러 영화를 잘 보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호러/서스펜스 영화 마니아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에 관해서는 지금 여기서 구구절절 적지 않겠다. 다만 MZ세대로 통칭되는 90년대 생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현실보다 무서운 건 딱히 없다는 걸 깨달았다, 는 정도로만 밝혀둔다.

그렇게 내 현실의 공포를 압도하는 서사를 찾아 사계절 내내 호러/서스펜스 영화를 보는 내 앞에 이 영화가 나타났다. 메릴 스트립,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부터 제니퍼 로렌스, 아리아나 그란데, 티모시 샬라메까지 출연진만으로 볼 가치가 충분한, 어마어마한 라인업으로.

영화는 천문학과 대학원생인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가 약 6개월 후 지구와 충돌할 것이 거의 분명한 혜성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에베레스트 산 크기의 ‘디비아스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절체절명의 상황. 케이트의 담당교수인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사실을 정부에 알리기 위해 케이트와 백악관으로 달려가지만 정치공작과 여론에만 정신이 팔린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과 그의 측근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포기하지 않고 각종 미디어를 동원해 이 중대한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미디어와 대중들은 반년 앞으로 다가온 지구멸망 이슈보다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의 스캔들에 더 뜨거운 관심을 보인다. 지구멸망이라는 엄청난 사태를 가볍고 재미있게만 다루려는 이 모든 상황에 화가 난 케이트는 ‘지구 전체가 파괴된다는 소식은 재미있으면 안 된다, 무섭고 불편해야 하는 사실’이라고 생방송 중에 선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대중은 그런 케이트의 모습마저 하나의 ‘짤’로 만들어 SNS 밈으로 가볍게 소비해버린다. 그렇게 케이트가 부르짖은 메시지는 허공에 간 데 없이 흩어지고, 지구멸망의 날은 시시각각 가까워져 온다.

뒤늦게 이 사안의 중대함을 깨달은 정부가 혜성을 파괴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가 싶지만, 이 역시 혜성의 경제학적 가치를 들먹이며 전 인류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는 IT 기업 ‘BASH’와 대통령의 유착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혜성에 들어있는 희귀 광석들이 부와 일자리를 창출할 거라는 정치 공작과, 머리 위로 빤히 보이는 혜성을 반대파의 선동으로 몰아가며 위를 올려다보지 말라는 ‘돈 룩 업(Don't look up)’ 운동이 판치는 이 기막힌 현실을 뚫고 인류는 문명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네 현실은 이렇지 않다, 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 더욱 씁쓸하고 두려운 영화 <돈 룩 업>은 명백한 멸망을 눈앞에 두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인류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그려낸다. 그리하여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인류는 문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인류가 만들어낸 자본주의 문명은 이어갈 가치가 있는 것일까?’로 옮아간다.

모든 것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며 자본의 입맛에 맞지 않는 ‘불편한 진실’은 가벼운 웃음으로 은폐되어버리는 세계. 멸망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웃음과 축제가 끊이지 않는 세계. 영화 <돈 룩 업>은 한 줌의 동정도 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세계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멸망이 반년 앞으로 다가왔다는 영화 속의 설정이 단지 영화적 장치로만 보이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다음 세대를 내다보지 않고 현재의 안락과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인류. 그리고 그런 인류를 감당하지 못하고 실시간으로 이상 신호를 보내는 지구. 우리는 이 별에서 얼마나 더 풍족한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우린 정말 부족한 게 없었다’는 민디 박사의 대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크나큰 책임과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다시금 자문해본다.
지금 우리에게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을까?
60년? 6년? 6개월?

아니, 어쩌면 6일?

1월에 만났지만 올해 최고의 호러 서스펜스 영화로 꼽히기에 충분한 작품, 영화 <돈 룩 업>의 장르는 ‘블랙 코미디/SF’다. 아무 생각 없이 이 영화를 보며 쿡쿡 웃을 수 있는 날을 진심으로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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