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의 기록/뜨리의 슬기로운 OTT 라이프17 영화 : 폴 600미터 (웨이브) 폭염을 잊게 하는 아찔한 공포, 여름이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영화를 찾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한 시간 단위로 폭염 재난문자가 날아드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더더욱. 해마다 새로운 공포영화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사연을 알고 나면 결국 슬픈 동양의 귀신이나 운 나쁜 사람들에게 들러붙어 고통을 주는 서양의 악마가 주는 공포는 이제 진부하다. 그렇다고 해서 어두컴컴한 공간을 배경으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조마조마하고 싶지도 않고, 기괴한 음향에 귀를 틀어막고 싶지도 않은 나. 도대체 뭘 보고 싶은 거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그저 아리 에스터 감독의 같은 신박한 공포를 기다리고 있다고 답할 뿐. 좀처럼 끌리는 공포영화를 찾지 못하고 있는 내게 한 줄기 빛과 같이 나타난 영화가 바로 (이하 )였다. 사실 이.. 2023. 8. 9. 영화 : 너와 100번째 사랑 (뜨리의 슬기로운 넷플생활) 계절의 끝, 청춘의 맛 영화 시간여행물을 특별히 찾아보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좋아하는 콘텐츠의 상당수가 시간여행물이다. 장르 자체에 대한 호오(好惡)를 떠나 십대 시절에는 를, 이십대가 되어서는 을 무척 좋아했다.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 시간여행물은 하나의 장르가 되어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시간이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착실하게 앞으로만 흘러가는 것이고,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지구를 벗어나 달에도 가고, 더 먼 행성으로도 갈 수 있는 인간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인간은 더더욱 타임라인을 자유롭게 누비는 상상을 하게 되는 걸지도. 뜨슬넷에서 앞으로 다룰 콘.. 2023. 2. 26. 애플TV 드라마 : 콜(Calls) 전화선을 타고 번지는 공포, 대화형 코스믹 호러 애플TV 호러 장르에 있어서 소리는 중요한 요소다. 시각적인 공포도 중요하지만 관객을 서서히 공포로 몰아넣는 배경음이나 불길한 느낌의 음악뿐 아니라 문이 열릴 때 나는 ‘끼이익’ 효과음, 주인공의 숨소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리가 철저히 계산되었을 때 극한의 공포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호러는 소리로 완성되는 장르다. 여기 소리로 완성되는 장르를 넘어 소리만으로 이야기를 직조해가는 호러 드라마가 있다. 극 중 인물들의 모습이 전혀 나오지 않고 두 사람(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전화하는 방식으로 극을 전개해나가는 애플TV의 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20분 내외로 구성된 아홉 편의 이야기가 오로지 소리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독특한 문법의 이 드라마는.. 2023. 1. 24. 팟캐스트 : 정희진의 공부 으슬으슬 감기기운이 있을 때 종합감기약이 필요하듯 책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 저자의 책이 절실한 순간이. 나에겐 정희진 작가가 바로 그렇다.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콘텐츠연구가인 정희진의 책은 일하는 젊은 여성인 내가 일터에서, 또 일상에서 자잘한 모멸과 혐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나를 다잡아 주었다. 문제를 알게 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언어로 이 기분을 말할 수 있을 때 내 세상은 바뀐다고, 그가 알려주었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정희진 작가의 책은 이다. 국내 저자가 쓴 페미니즘 책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책의 표지 정도는 보았을 정도로 한국 페미니즘의 필독서라고 해도 손색없는 책. 나 역시 이 책으로 페미니즘에 입문했다. 20대.. 2023. 1. 21. 드라마 : 하트스토퍼 Heartstopper (뜨리의 슬기로운 넷플생활) 내 마음을 멈추는 사람 드라마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그중에서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불특정 다수의 또래집단과 마주하는 청소년기는, 함께 할 사람들을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는 성인기와 다르게 더욱 버라이어티 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는 시기다. 예민하고 섬세한 이 시절을 지나며 사람 때문에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우리는 점차 나를 알게 되고,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운이 좋다면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내 심장을 멈추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심장을 멎게 하는 사람,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데도 자꾸만 함께 있고 싶고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 는 그런 사람을 만난 두 소년, 찰리와 닉의 이야기다. 게.. 2022. 6. 1. 드라마 : 레아의 7개 인생 (뜨리의 슬기로운 넷플생활) 일곱 개의 삶, 일곱 개의 진실 드라마 우리는 타인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 자신으로 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은, 주어진 성격과 기질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며 내가 경험한 꼭 그만큼의 세계를 알게 된다. 함께 부대끼며 삶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되어 살아보지 않은 이상 다른 사람에 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나 자신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가 하물며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프랑스 드라마 은 나를,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지 못해 방황하는 청소년 레아(라이카 아자나비시위스)의 이야기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그저 이어가기만 하는 부모님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내내 헤.. 2022. 5. 29. 드라마 :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뜨리의 슬기로운 넷플생활) 남자도 임신하는 세계의 여자들 드라마 SF 소설가 옥타비아 버틀러는 소설 에서 남성 임신이라는 소재를 독특한 상상력으로 선보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류는 곤충과 유사한 모습을 한 ‘틀릭’이라는 생명체가 사는 행성에 정착하는 대가로 남자아이를 틀릭의 번식을 위한 숙주로 내어주는 계약을 맺는다. 이야기는 인간 남자아이인 ‘간’과 그를 숙주로 삼기로 한 외계인 ‘트가토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흥미로운 점은 소설 속에서 남자아이가 외계인의 알을 낳는 이유다. 남자아이여야만 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다기보다 인간 여성은 인간을 재생산해야 하는 까닭에 외계인의 숙주로 선택되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가 “이것은 남성 임신에 대한 이야기”라고 못 박은 소설 속에서조차 여성은 임신하고, 출산한다. “여인 없이도 생명이.. 2022. 5. 4. 드라마 : 이지파생활(뜨리의 슬기로운 넷플생활) 누나들을 위한 판타지 드라마 모든 것이 예전과는 다른 나이, 30대. 확연히 줄어든 아침잠이나 소화력만큼이나 떨어진 피부 탄력, 수시로 삐걱거리는 관절. 슬프게도 이 모든 게 사실이지만, 전과 다른 것이 비단 건강만은 아니다. 앞자리가 3으로 바뀌기 무섭게 나를 둘러싼 세상과 사람들의 기대도 변한다. 좋은 대학의 졸업장,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최선을 다해 이 두 가지를 성취하니 이제 돌아오는 것은 결혼은 언제 하고, 애는 언제 낳을 거냐는 주변의 간섭들 뿐.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온전히 나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살 수 있는 것일까? 상하이의 성공한 커리어우먼, ‘선뤄신(배우 친란)’의 삶도 대한민국의 흔한 30대 여성들과 다르지 않다. 천문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반대로 취.. 2022. 4. 24. 드라마 :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 (뜨리의 슬기로운 넷플생활) 마법소녀는 신을 꿈꾸는가 드라마 반은 인간, 반은 마녀인 소녀가 16세 생일을 앞두고 어느 쪽의 삶을 택할지 고민에 빠진다.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한쪽의 삶을 완전히 포기하라니. 게다가 말이 좋아 선택이지 마녀의 삶을 강요하는 가족에 맞서 홀로 인간의 길을 꿋꿋이 고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대도 지금까지 인간계에서 착실히 쌓아온 관계들이며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해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인간 남자친구는 또 어쩌지? 하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은 십대 소녀 사브리나는 그 나이에 걸맞은 패기로 그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인간계로 대변되는 ‘자유’도, 마녀회로 대변되는 ‘힘’도 사브리나는 모두 갖기를 원한다. 그렇게 인간계 고등학교와 마법학교를 오가는, 사브리.. 2022. 4. 16. 드라마 : 유성화원 (꽃보다 남자 중국판) 숨어서 보는 명작 특집1 어떻게 서사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드라마 영화 과 의 윤가은 감독은 최근 자신의 에세이집 [호호호 :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에서 자신의 은밀한(?) 취향을 진솔하게 드러냈다. 바로 그가 꼽는 인생 드라마 중 하나가 이며, 자신이 나 같은 ‘막장’ 드라마의 애청자라는 것. 소위 말하는 ‘거장’들의 대단한 작품은 아니지만 자신의 취향을 솔직하게 터놓는 그를 보며 나도 나의 길티 플레져(guilty pleaser)를 꺼내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하여 오늘 작품은 2018년에 나온 중국 드라마 . 일본에서도(2005), 한국에서도(2009) 라는 드라마로 제작된 바가 있는 이 작품은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만화가 연재된 시기가 1992년부터.. 2022. 4. 11. 드라마 : 그해 우리는 (뜨리의 슬기로운 넷플생활) 풋사과 맛 로맨스, 드라마 사과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강아지들과 나눠먹을 수 있는 과일 중 하나라 종종 사오곤 한다. 어렸을 때에는 빨갛게 농익은 사과만 먹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입맛도 변하는 것인지 새콤하면서도 아릿한 맛이 도는 풋사과가 한 번씩 생각난다. 아직 채 익지 않은 과실의 단단함, 그리고 싱그러움. 드라마 이 그려내는 청춘의 맛이 꼭 그렇다. 초여름의 녹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는 열아홉의 전교 1등 국연수(김다미)와 전교 꼴등 최웅(최우식)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다큐멘터리 촬영이라는 계기로 부딪히며 티격태격하는 영상은 방영 당시에는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네티즌들의 눈에 띄어 인기.. 2022. 1. 28. 드라마 : 상견니(想见你) (뜨리의 슬기로운 넷플생활) 운명을 믿나요? 드라마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건 순전히 배우 때문이었다. 제목이 간결해 어쩐지 기억에 남은 드라마 를 온라인에서 몇 번이고 추천 받은 일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중화권 드라마가 그러하듯 해당 드라마 역시 의미를 풀이하지 않고 한자 독음만을 갖다 붙여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제목의 뜻이 ‘네가 너무 보고 싶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뻔하디 뻔한 신파 멜로드라마일 것 같아 썩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운명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 별생각 없이 여느 때처럼 SNS를 하던 나는 그만 치여 버리고 만 것이다. 의 남자 주인공을 맡은, 대만 출신 배우 ‘허광한’에게.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최애가 내게로 왔다. 그를 알게 된 뒤로 나는 나의 이상형을 설명하는 수.. 2022. 1. 20.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