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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의 기록/뜨리의 슬기로운 OTT 라이프

영화 : 폴 600미터 (웨이브)

by 랄라맘맘 2023. 8. 9.

폭염을 잊게 하는 아찔한 공포,
<폴 : 600미터>
 
 
여름이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영화를 찾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한 시간 단위로 폭염 재난문자가 날아드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더더욱.
해마다 새로운 공포영화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사연을 알고 나면 결국 슬픈 동양의 귀신이나 운 나쁜 사람들에게 들러붙어 고통을 주는 서양의 악마가 주는 공포는 이제 진부하다. 그렇다고 해서 어두컴컴한 공간을 배경으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조마조마하고 싶지도 않고, 기괴한 음향에 귀를 틀어막고 싶지도 않은 나.
 
도대체 뭘 보고 싶은 거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그저 아리 에스터 감독의 <미드소마> 같은 신박한 공포를 기다리고 있다고 답할 뿐. 좀처럼 끌리는 공포영화를 찾지 못하고 있는 내게 한 줄기 빛과 같이 나타난 영화가 바로 <폴 : 600미터>(이하 <폴>)였다.
 
사실 이 영화는 작년에 개봉했을 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영화관에 가서 보면 더욱 좋았겠지만 영화관 접근성이 떨어져서 OTT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마침 웨이브에 뜬 것이다. 남편도 마침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한 터라 앉은 자리에서 가볍게 시작. 분위기만 살짝 보고 다음에 본격적으로 보려고 했으나 <폴>은 도입부터 심장이 쫄깃해지는 절벽으로 우리를 이끌더니 그 후 1시간 30분 동안 팽팽한 긴장감으로 결말까지 한 번에 달려가게 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절벽 암벽등반 중 사고로 남편 댄을 잃고 크게 상심한 벡키는 남편의 사망 1주기가 다 되어가도록 그의 유골을 뜯어보지도 못한 상태다. 그런 벡키의 친구이자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유튜버인 헌터는 폐인이 된 벡키에게 댄의 1주기를 맞아 미국에서 네 번째로 높은 철제 탑에 올라 그의 유골을 뿌려주자고 제안한다. 댄의 죽음 후 암벽등반을 하지 않은 벡키는 주저하지만 결국 헌터와 함께 지상에서 600미터 위로 솟은 탑에 오르기로 한다.

비록 가는 길에 불길한 징조들이 도처에 깔려 있지만, 게다가 내년에 철거를 앞두고 있다는 탑은 삐걱대며 위태롭기 그지없지만, 두 사람은 무사히 탑의 정상에 올라 댄의 유골을 뿌리는 데 성공한다. 드론을 이용해 멋들어진 영상을 촬영하고, 탑의 구조물에 대담하게 매달려 ‘인생셀카’를 몇 장 건지는 일도 잊지 않는다.

감격의 순간도 잠시, 두 사람이 다시 600미터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낡은 사다리의 나사가 빠지면서 이어진 사다리들이 줄줄이 공중에서 분해되어 아래로 떨어져 버린 것. 다행히 튼튼한 줄과 장비로 서로의 몸을 연결하고 있었기에 먼저 내려가려던 벡키는 사다리가 무너지는 중에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나 한 두 칸이 아니라 꽤 긴 구간의 사다리가 사라져 둘은 탑의 꼭대기, 두 사람이 바짝 붙어 앉을 수 있는 것이 고작인 공간에 고립되어 버린다.

그들이 가진 것은 통신이 되지 않는 스마트폰 2개와 몸에 걸친 옷가지, 탑 꼭대기에 비치되어 있던 조명탄 한 발과 망원경 하나, 그리고 벡키와 헌터를 이어주는 줄뿐.
드론과 물병을 담은 배낭은 사다리가 무너지면서 15m 가량 떨어진 아래쪽 구조물에 걸려버렸다. 두 사람은 암벽등반으로 다져진 근육으로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보려 한다. 그러나 영화 초반부에 등장한 불길한 복선들이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시시각각 두 사람에게로 다가온다.
설상가상으로 온전히 서로에게만 의지해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벡키는 자신과 댄만 공유한다고 생각했던 비밀스러운 암호가 헌터의 몸에 새겨진 것을 발견하기까지 하는데... 과연 두 사람은 지상으로부터 600미터 떨어진,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화면으로 보는 광경임에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고공의 공포 속에서, <폴>은 한 시간 삼십 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무색하게 쏜살 같이 흘러간다. 중반 이상에 이르면 나름의 반전도 있어 지루할 틈 없이 볼 수 있기도 하다.
초반부의 유사성(남편의 죽음, 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 동물의 사체가 암시하는 불길한 분위기 등) 때문인지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플롯이 다소 비슷한 영화 <디센트>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폴>은 <디센트>처럼 여자들의 우정과 배신, 복수에 초점을 맞추며 상실을 겪은 사람의 황량한 내면을 다루는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 <폴>은 스릴 넘치는 영상미와 조금만 잘못된 시도를 해도 목숨이 위험한 짜릿한 상황 속에서 재미를 찾아가는 오락영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갇힌 주인공이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느냐가 관건인 영화를 볼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상황의 독특성과 해결책의 기발함, 결말까지 도달하는 과정의 인과성이다. 그런 점에서 <폴>은 위의 세 가지 기준을 만족스럽게 충족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아무래도 영화가 전하는 주제의식이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매 순간 살아있으라는 메시지를 서사에 녹여내지 않은 채 대사로만 반복하는 점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 특히 결말부에 이르러 영화의 주제가 ‘소중한 사람을 사고로 잃고 삶의 의지를 상실한 이가 극한의 상황에 몰리며 삶의 의지를 되찾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벡키와 헌터 두 사람 사이의 갈등서사가 상황 자체의 극적 분위기를 넘어서지 못해 ‘인생은 순간이고 그렇기에 매순간 살아있음을 느껴야 한다’는 헌터의 메시지가 힘을 잃은 것이 아쉬웠다.
오히려 이러한 메시지가 벡키의 입을 통해 나왔다면, 혹은 영화가 벡키의 각성 또는 벡키와 헌터의 화해 둘 중 하나만을 좀 더 확실하게 선택해 밀고 나갔다면 더욱 군더더기 없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혹은 그럴싸한 주제에 대한 중압감을 벗어던지고 대단한 깨달음이 없더라도 권태로운 현실을 색다르게 잊게 할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을 듯하다. 서사 자체의 매력이 충분하다면 가슴에 묵직하게 남는 메시지가 없더라도 그 나름대로 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폴>은 더운 여름 등골을 서늘하게 해줄 킬링타임용 영화로 손색이 없다. 색다른 공포, 아찔한 자극을 찾는 당신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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