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뜰의 기록/뜨리의 슬기로운 OTT 라이프

팟캐스트 : 정희진의 공부

by 랄라맘맘 2023. 1. 21.



으슬으슬 감기기운이 있을 때 종합감기약이 필요하듯 책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 저자의 책이 절실한 순간이.

나에겐 정희진 작가가 바로 그렇다.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콘텐츠연구가인 정희진의 책은 일하는 젊은 여성인 내가 일터에서, 또 일상에서 자잘한 모멸과 혐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나를 다잡아 주었다. 문제를 알게 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언어로 이 기분을 말할 수 있을 때 내 세상은 바뀐다고, 그가 알려주었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정희진 작가의 책은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국내 저자가 쓴 페미니즘 책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책의 표지 정도는 보았을 정도로 한국 페미니즘의 필독서라고 해도 손색없는 책.
나 역시 이 책으로 페미니즘에 입문했다. 20대 중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떨렸던 손과 마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후로 <정희진의 읽기>, <낯선 시선>, <아주 친밀한 폭력(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등 그 이름이 저자로 오른 책을 읽으며 지금의 내가 되었다.

언젠가 대학원에 간다면 정희진 작가가 교수로 있는 곳에서 여성학을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현실은 대학원에 갈 돈도, 시간도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오프라인 강의를 하실 때 기회가 되면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 팟캐스트를 알게 되었다.

구독형 팟캐스트인 [정희진의 공부]는 대학교 강의 같은, 그런 수업 콘텐츠는 아니다.

그렇다기 보다는 정희진이라는 사람이 일상을 살면서 느낀 사유들을 두서없이 늘어놓는 걸 두런두런 듣고 있는 일에 가깝다.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면서.
웃고 또 때때로 울면서.

그래서인지 이 팟캐스트를 들을 때면 정희진 작가가 주인장인 카페에 단골손님이 되어 잠깐 방문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속에서 나는 그의 막역한 친구이기도,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이기도, 제자이기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여성이기도 하다.

그의 카페에서 나는 그가 걸어온 배움의 길을 엿보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의 감각을 공유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잠시 곁에 머물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정희진의 공부]는 정희진의 공부, 그리고 삶을 1열에서 지켜보며 그에 대해 나의 힘으로 생각해보는 경험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팟캐스트의 부제 그대로, ‘앎의 쾌락과 약간의 통증’을 동반한 달콤쌉쌀한 경험이다.
희망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또 한 주를 살아낼 힘을 얻는다는 게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팟캐스트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정희진의 공부]는 이 시대를 함께 통과하는 우리에게 학자이자 작가인 정희진이 권하는, 그가 직접 내린 핸드드립 같은 콘텐츠라 하겠다.

핸드드립 커피가 최소 5천원부터 시작하는 현실을 고려해보자면 월 5천원, 핸드드립 커피 한 잔 값에 채 못 미치는 금액으로 세상의 쓴맛과 풍미를 두루 느끼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만의 시선으로 읽을 것.
그것이 설령 나만의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저자와 결투하듯 책을 읽는다는 정희진이 청자에게도 바라는 것은 다만 그것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이 공간에서 함께 웃고 울며 지금 이 야만의 시대를 함께 직시해보면 어떨는지.

치열하게 읽고 쓴 저자의 일상 한 조각에 초대받을 수 있어 더 없이 기쁘다. 매거진 형식으로 매월 대 여섯 개 정도의 콘텐츠를 만나보는 이 시간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