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선을 타고 번지는 공포, 대화형 코스믹 호러
애플TV <콜(Calls)>
호러 장르에 있어서 소리는 중요한 요소다.
시각적인 공포도 중요하지만 관객을 서서히 공포로 몰아넣는 배경음이나 불길한 느낌의 음악뿐 아니라 문이 열릴 때 나는 ‘끼이익’ 효과음, 주인공의 숨소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리가 철저히 계산되었을 때 극한의 공포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호러는 소리로 완성되는 장르다.
여기 소리로 완성되는 장르를 넘어 소리만으로 이야기를 직조해가는 호러 드라마가 있다.
극 중 인물들의 모습이 전혀 나오지 않고 두 사람(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전화하는 방식으로 극을 전개해나가는 애플TV의 <콜>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20분 내외로 구성된 아홉 편의 이야기가 오로지 소리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독특한 문법의 이 드라마는 일단 1화 ‘종말’을 듣기 시작했다면 9화 ‘윤년에 태어난 딸’까지 단숨에 내달리게 하는 힘이 있다.
(나처럼) 짧은 길이에 가벼운 마음으로 재생을 눌렀다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감당이 되지 않을 지도. 신년을 앞둔 12월 30일, 느닷없이 종말이 들이닥친 세계의 풍경을 두 연인의 대화를 빌려 들려주는 1화가 끝나면 머릿속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가 되어버리니까.
15분짜리 짧은 대화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들었는데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기이한 사건과 함께 갑작스럽게 인류가 종말을 맞았다는 사실 뿐. 도대체 지구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2화를 재생하면 드라마는 시계를 거꾸로 돌려 종말 이전부터 서서히 쌓여온 종말의 징조들을 하나씩 꺼내어 들려준다.
그렇게 <콜>의 세계에 빠져들면 그때부터 우리는 전화 속 인물이 주는 음성 정보에만 의존해 머릿속으로 퍼즐을 맞춰가야 한다.
완성될 그림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조금씩, 천천히. 어둠 속에서 물체의 윤곽을 더듬어 가듯이.
옵니버스 형식의 <콜>은 매회 다른 등장인물들이 극을 이끌어가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한시도 놓을 수 없다.
통화 연결음이 멈추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우리는 등장인물 간의 관계와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 현재 벌어지는 사건을 상상하며 숨 가쁘게 목소리를 쫓아가야 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교차하며 실체 없던 공포가 서서히 실체를 더해갈 때,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은 그저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뿐이다.
인간이 결코 대적하거나 거스를 수 없는 우주적 존재를 마주할 때의 아득한 무력감, 이를 바탕으로 인간이 느끼는 공포를 흔히 ‘코즈믹 호러’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콜>은 목소리를 재료로 이야기를 빚어내는 오디오드라마 스타일의 코스믹 호러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의 끝에서 알 수 있듯, 어느 정도는 인간이 책임이 있는 재앙이기에 진정한 의미의 코즈믹 호러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밀도 높은 대사, 그리고 이를 생생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력. 풍부한 청각적 자극으로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가는 드라마 <콜>.
스펙타클한 영상미로 눈이 즐거운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지금, 시각적 자극을 끊임없이 좇기보다 잠시 눈을 감아보는 건 어떨까? 시각 이외의 감각을 사용해 이야기를 따라가는 낯선 경험이 또 다른 재미와 새로움을 선사할 것이다.
(덧붙임) 엄밀히 말하면 <콜>은 귀로만 듣는 오디오드라마는 아니다. 애플TV에서 재생할 수 있는 영상이 있기는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극 중 인물들의 모습이 영상에 전혀 나오지 않고 기하학적인 패턴과 등장인물의 이름, 대사만이 시각정보로 주어지기 때문에 소리만으로 극이 진행된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또한 소리와 더불어 자막으로도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에 완전히 청각만을 이용한 콘텐츠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영상을 통해 전달하는 정보를 최소화했다는 의미에서 청각에 초점을 맞추어 리뷰를 작성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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