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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의 기록/뜨리의 슬기로운 OTT 라이프

드라마 : 레아의 7개 인생 (뜨리의 슬기로운 넷플생활)

by 랄라맘맘 2022. 5. 29.

일곱 개의 삶, 일곱 개의 진실
드라마 <레아의 7개 인생>


우리는 타인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 자신으로 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은, 주어진 성격과 기질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며 내가 경험한 꼭 그만큼의 세계를 알게 된다. 함께 부대끼며 삶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되어 살아보지 않은 이상 다른 사람에 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나 자신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가 하물며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프랑스 드라마 <레아의 7개 인생>은 나를,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지 못해 방황하는 청소년 레아(라이카 아자나비시위스)의 이야기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그저 이어가기만 하는 부모님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내내 헤매기만 하는 자신도 지긋지긋한 레아는 깊은 산속 계곡에서 대낮에 펼쳐진 광란의 파티를 벗어나 아무도 없는 외진 장소로 향한다.
그곳에서 레아가 발견한 것은 백골의 사체. 죽으려고 찾은 곳에서 이미 죽어 뼈만 남은 신원불명의 사체에 그는 깊은 호기심을 느낀다. 경찰이 젊은 남성이라고 추정하는 이 사람에게는 대체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죽으려고 한 나를 다시 삶으로 끌어당긴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그런 레아의 마음이 하늘에 닿기라도 한 건지 사체를 발견한 다음 날 레아는 백골이 된 남성이 살아있던 시대로 타임슬립을 한 채 깨어난다. 그것도 죽은 그 남자, 이스마엘(카릴 벤 가비아)의 몸 속에 들어간 채로.


타임슬립과 바디 스위치(Body switch)가 합쳐진 독특한 문법의 판타지를 선보이는 이 작품은 레아가 이스마엘의 죽음과 관련된 일곱 사람이 되어 각각 하루씩, 일곱 개의 삶을 일주일 동안 살아보며 그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파헤치는 추리 드라마다.

흥미로운 점은 레아가 빙의(?)하는 일곱 사람 중에 엄마, 아빠도 있다는 것. 젊은 시절 부모님이 이스마엘과 함께 밴드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충격도 잠시, 이스마엘의 죽음에 부모님이 깊이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레아는 큰 혼란에 빠진다.

서서히 퍼즐을 맞춰가며 이스마엘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레아. 총 일곱 편으로 이뤄진 길지 않은 이야기의 끝에서 레아는 엄마와 아빠가 감춰왔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또한 이스마엘을 살리는 선택을 하면 미래의 자신(레아)이 태어나지 못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일곱 개의 실타래를 풀어 마침내 운명의 장난 같은 갈림길에 선 레아. 레아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시놉시스만으로도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드라마 <레아의 7개 인생>.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이 드라마의 진짜 매력은 일곱 개의 삶을 체험하며 레아가 깨닫는 삶의 진실에 있다.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간 레아는 이스마엘에게 폭력을 일삼는 파이가 엄격한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라는 것과, 젊은 시절의 엄마를 조롱하던 상드라가 여성 혐오가 만연한 집에서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아 왔다는 것을 당사자로서 경험한다.


물론 폭력의 피해자가 모두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결국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인식하는 세계관 안에서 자신이 아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드라마의 메시지는 내가 알고 있는 삶에 대한 진실이 보편적인 진리가 아님을 일깨운다.


저마다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의 삶이 있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끝내 향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아무래도 타인을 이해할 수 없으니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리라.

다만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오직 자기 몫의 진실만을 가진 우리가, 내가 아닌 수많은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해 서로에게 친절하려 노력하는 일뿐이라는 것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서로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를 진심으로 대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지.

이조차도 온전히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내 몫의 진실에 입각한 희망이겠으나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더 멀리까지 함께 갈 수 있을 거라고, 감히 그렇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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