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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의 기록/뜨리의 슬기로운 OTT 라이프

드라마 :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뜨리의 슬기로운 넷플생활)

by 랄라맘맘 2022. 5. 4.

남자도 임신하는 세계의 여자들
드라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SF 소설가 옥타비아 버틀러는 소설 <블러드 차일드>에서 남성 임신이라는 소재를 독특한 상상력으로 선보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류는 곤충과 유사한 모습을 한 ‘틀릭’이라는 생명체가 사는 행성에 정착하는 대가로 남자아이를 틀릭의 번식을 위한 숙주로 내어주는 계약을 맺는다.

이야기는 인간 남자아이인 ‘간’과 그를 숙주로 삼기로 한 외계인 ‘트가토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흥미로운 점은 소설 속에서 남자아이가 외계인의 알을 낳는 이유다. 남자아이여야만 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다기보다 인간 여성은 인간을 재생산해야 하는 까닭에 외계인의 숙주로 선택되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가 “이것은 남성 임신에 대한 이야기”라고 못 박은 소설 속에서조차 여성은 임신하고, 출산한다.



“여인 없이도 생명이 탄생하는 다른 길이 있다면, 삶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일찍이 에우리피데스가 희곡 <메데이아>에서 이아손의 입을 빌려 말했듯 나 역시도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왜 인간은 여자의 몸을 통해서만 태어날 수 있는가. 성별에 관계없이 임신할 수 있다면 출생률도 높아지고, 남자들도 어디서든 당당하게 ‘나는 애 둘은 낳고 싶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우주로도 나가고 인공지능 로봇도 만드는 21세기에 도대체 왜 남성 임신은 아직이냐는 말이다. (남성용 경구 피임약이 최근에야 등장한 이유와 일맥상통하겠지만.)


이렇듯 임신과 출산 이야기만 나오면 ‘급발진’하는 내게, 넷플릭스에 뜬 남성 임산부의 포스터가 한눈에 들어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까. 일본 드라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은 남성도 임신을 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린다.

그렇다고 모든 남성이 임신이 가능한 것은 아니고 임신을 할 수 있는 남성이 드물게 존재한다는 설정이다. 드라마는 광고 회사의 에이스 직원인 ‘켄타로’(사이토 다쿠미)가 남성의 몸으로 임신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임신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아오던 남성은 임신을 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새롭게 감각한다. 임신이 가져오는 신체의 변화는 당연했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고, 이에 더해 ‘남성 임산부’라는 소수자성이 그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삶으로 이끈다.


갑자기 자신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사건-임신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켄타로는 파트너인 ‘아키’(우에노 주리)를 찾아간다. 임신 사실을 밝히는 켄타로에게 ‘내 아이가 맞느냐’고 묻고, 원치 않는 임신임에도 ‘오히려 축복’ 일지 모른다며 그럼에도 ‘네가 원한다면 (중절에) 동의해주겠다’라고 말하는 아키의 모습은 그간 대중매체 속에서 숱하게 다뤄진 ‘섬세하지 못한’ 남자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이것이 임신 문제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대개의 사람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수 있는 법이니까. 성별이 뒤바뀌어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장면들은 충분히 현실적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큰 아쉬움을 남긴다.

드라마가 남성 임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임신하지 않는 몸,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만을 상정하는 현실의 시스템을 폭로하고, 성별을 떠나 사회적 약자도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수자의 삶에 대한 표면적인 성찰에만 그쳤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며 남성/여성이 아닌 나다움에 대해 말하는 메시지 역시 이제 너무도 흔한 것이 되어버려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이조차도 파격적인 메시지인지, 그곳에 살지 않는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이 선택한 재료에 비해 너무도 익숙한 맛을 내는 데 그쳤다는 것은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남성 임신이라는 소재를 영상화하기로 한 기획에 비해 서사와 디테일의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켄타로는 남성 임신의 특수성을 이용해 잡지 모델이 되는 등 남성이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현실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에서도 임신한 여성의 존재는 너무도 당연해서 오히려 지워진다.

남자도 임신하는 세계의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무래도 나는 그것이 더 궁금하다.
남자의 몸으로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 켄타로보다 1화에 잠깐 등장한,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받으면서도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여성 임산부의 얼굴이 더 오래 떠오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임신한 여성을 주인공이나 비중 있는 조연으로 설정해 그들의 삶을 가시화하는 드라마들이 등장하는 이때,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이 있을 자리는 과연 어디인가.

오직 여성만이 임신하고 출산하는 이 세계에서, 임신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자주, 크게 들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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