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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07 : 고라니

by 구루퉁 2020. 11. 5.

 

야생동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어왔다. 10대 이전엔 야생동물하면 호랑이가 떠올랐고 이후엔 늑대나 여우, 20대가 되어서 길고양이들, 30대가 되어서는 고라니가 떠오른다. 10대 이전에는 야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와일드함 때문인지 호랑이가 떠올랐지만 우리나라엔 더 이상 호랑이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 후로 늑대나 여우를 쉽게 떠올렸다. 그리곤 20대가 되어 자취방에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서 길고양이를 떠올렸다. 이 때까지만 해도 실제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은 고양이밖에 없었다.

30대인 지금은 참 다양한 동물들이 떠오르는데,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라니. 한밤중 고라니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그 강렬함에 누구라도 잊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또 운전을 하면서 고라니를 한 번씩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레 고라니가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된다. 시골길을 운전하다 보면 죽은 고라니를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01 : 모든 생명에게 안전을 존중을!편에서 잠시 소개 했었다.)

귀촌을 한 뒤로는 산 고라니를 자세히도 그리고 자주 보게 된다. 논둑길을 걷다가 갑자기 논에 뛰어나가 포도밭으로 사라지는 고라니를 보기도 하고, 마당에서 보이는 건너편 공터에서 풀섶을 뒤지는 고라니를 보기도 한다.

마당에서 보이는 저 풀밭에 고라니가 자주 나타난다.

홀연히 나타나서 겅중겅중 뛰며 사라지는 고라니들의 학명은 Hydropotes inermis. 영어로는 Water deer. 워터디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강기슭에 주로 서식해서 라고 한다. 웹에서 생태적 특징을 찾아보니 낮은 야산의 중턱, 산기슭이나 강기슭, 억새가 무성한 풀숲 등지에 산단다. 그래서 자주 보였던 것이다. 우리 마을은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다. 강이 넓게 퍼진 곳에는 억새가 무성하고 여름에 쉴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들도 있으며, 마을을 벗어나면 겨울에 먹을 수 있는 곡식 낟가리들이 널려있다. 딱 고라니가 살기 좋은 환경을 고루 갖추고 있으니, 고라니가 살 수밖에.

국립생태원 제공 이미지

많은 한국 남자들이 군대에서 고라니를 처음 마주하게 되는데, 이 때 가장 놀라는 것은 송곳니다. 고라니가 사슴과 중에 가장 몸이 작다고 하면 귀엽겠다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라니는 뱀파이어처럼 기다란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 암수 모두 뿔도 없고 울음소리도 괴상하다. 우웨에엑! 하고 울어대는데, 발정기가 오면 짝은 찾는 소리란다. 뭔가 상식에 어긋나는 듯한 울음소리와 초식동물이 가지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 희한하다.

국립생태원 제공 이미지

국내에서는 고라니의 수가 많고 작물을 해치는 동물이다 보니 유해동물로 분류되지만 사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중국 일부(1만 마리 추정)와 한국(최소 10~ 최대 75)에만 남아있다고 한다. 특히 DMZ 지역에 많이 서식하고 있는데, 최근 다큐에서 보니 DMZ 특성상 근친교배가 자주 일어나 건강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선정한 멸종 위기종 적색 목록에도 포함돼 있다. 미묘하다.

중국에서는 거의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고 한국에서는 유해동물이다 보니 고라니의 미래가 참으로 암담하다. 일부 지역에만 서식하는 희귀종은 해당 지역에서 멸종이 되면 곧 지구상에서 멸종을 의미한다. 유해동물로 지정해도 괜찮은 걸까. 무분별한 개발과 인간편의 중심적인 난개발로 고라니는 과거보다 인간과 접점이 많아졌다. 또한 경쟁 가능 종이나 천적이 없어지다 보니 개체수는 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고라니가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고라니가 사라지는 것이다. 한 종의 멸종을 고민해 봐야할 문제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이 결정하게 되었으니 책임 또한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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