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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08 : 절지동물

by 구루퉁 2020. 11. 6.

 

으갸-!

침대에 누워있는데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 무슨일이야! 벌떡 일어나는데 아내가 침대로 뛰어들어온다.

지네! 지네!”

지네? ? 와이프는 나를 껴안고 고개를 끄덕인다. 서울로 다시 가지고 하면 어쩌지? 지네는 나도 무섭고 싫은데. 조심스레 주방으로 가본다. 어딨어? 어디야?

저쪽에 있었어.”

아무 것도 없다. 싱크대 아래로 숨은 모양이다. 얼마나 커다란 지네였을까? 그 날 우리 부부는 바퀴벌레용 살충제 한 통을 모조리 주방에 뿌렸다. 지네가 숨을만한 곳 구석구석 꼼꼼하게 뿌렸다. 다음 날 지네는 거실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슬금슬금 현관으로 나가고 있었다. 컸다. 10센치는 넘어 보였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지네. 온몸에 닭살이 올랐다. 꼬리뼈에서부터 타고올라오는 소름. 나는 아내에게 거실로 나오지 말고 서둘러 집게를 찾아달라고 했다.

살충제를 여러통 사두길 잘했다. 나는 지네를 향해 살충제를 뿌렸다.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살충제 맞아? 나는 계속해서 살충제를 흔들어대며 지네를 향해 뿌렸고 바닥이 흥건하게 젖을 때가 돼서야 지내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주황색 배를 들어내고 빙글빙글 돌며 괴로워하는 지네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모습이 더 징그러워 살충제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지네는 괴로워할 뿐 죽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쯤 아내가 집게를 찾아 내밀었다. 집게로 지네를 집어들었다. 몸부림치는 지네의 힘이 느껴졌다. 밖으로 나와 담벼락 너머에 던졌다.

다신 보지말자. 그리고 그 다음 날 현관에서 비슷한 크기의 지네를 한 마리 더 찾았다. 지네는 암수가 쌍으로 같이 다닌다던 옛말이 떠올랐다. 한 마리를 잡으면 한 마리는 근처에 있으니 꼭 2마리를 다 찾아 잡아야지 안그러면 남은 지네가 복수를 한다나 뭐라나. 그 날 뒤로 나는 지네가 꼭 부부처럼 같이 다닌다는 말을 믿게 되었다.

시골에 내려오니 지네가 1년 한두 번은 나온다. 나는 웹을 열심히 뒤져 지네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지네는 닭을 좋아해서 닭뼈가 있으면 지네가 꼬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치킨을 먹은 다음 날 지네가 나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집에서는 순살만 시켜먹고 밖에 나가서야 뼈있는 치킨을 먹었다. 간혹 닭뼈가 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바로 그날 닭뼈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멀리 나가서 버리기까지 했다. 오골계는 지네를 먹여 키운다는데, 청계와 백봉을 키워보니 지네는 주로 밤에 나오고 밤에는 닭이 잔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닭장에 지네가 꼬이기까지 했다. 지네와 닭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인 것이다. 미묘하고 희한한 관계다.

시골살이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제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이제는 지네를 막는 가루약이 뭔지도 안다. 실제로 내가 효과를 본 약이다. 하지만 강아지들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가끔씩만 뿌리고 있다. 지네에 물렸을 때엔 도시에 있는 큰병원에 가지 말고 시골에 있는 작은 병원으로 가야 약이 있다는 것도 안다. 도시에는 지네에 물려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처방약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시골엔 흔하다보니 시골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 사는 마을로 이사온 뒤로는 집 안에서는 마주치지 않았다. 딱 한 번 마당에서 마주쳤을 뿐. 대신 건물 외벽에 노래기가 많다. 시골에서는 절지동물이 너무 흔하다. 이제 아내도 돈벌레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때려잡는다. 심지어 눈 앞에만 안보이면 우리집에서 살아도 된단다. 나도 이젠 지네를 봐도 예전만큼 놀라지 않는다. 절지동물들이여, 우리 서로 집 안에서는 마주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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