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10 : 시골에서 마주치지 않는 것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리즈 에쎄이를 벌써 9개나 연재했다. 이쯤에서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 말고, 마주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시골에서 마주치지 않는 것 중에 가장 먼저 꼽고싶은 것이 있다. 도시인들을 지치게 만들는 바로 그것, 교통체증! 출퇴근 시간은 어째서 급여에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서울에 살 때는 어딜가든지 1시간은 걸렸다.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 해도 1시간을 잡는 것이 서울 교통의 정석. 빡빡한 버스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숨막히는 지옥철에 몸을 구겨넣는 것이 출퇴근! 가기 싫은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가장 하기 싫은 일을 해야했던 나는 시골생활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으로 교통체증이 없다는 점을 꼽는다.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시골의 교통 인프라가 너무나 불편하다. 지하철은 꿈도 안 꾼다. 집에서 버스를 타려면 15분은 걸어나가야 한다. 서울에 살 때를 생각해보면 보통 5분거리 안에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그마저도 없으면 마을버스 정류장이라도 있었다. 그리고 조금 골목이 많은 동네로 들어가게 되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거리상으로 보면 반경 1km 안에 버스정류장 하나쯤은 있었다. 도로에 나가면 택시들이 지나다녔고, 콜택시를 부르면 이보다 쉬운 일이 없었다. 시골은 택시가 손에 꼽는다. 우리 군에 택시 번호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끝자리가 10번을 넘어가지 않는다. (예컨대 00운수 00바 4001부터 4009번까지 있다거나.)
지금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은 도보 28분. 거리는 그렇다 치고,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하루에 4번 선다. 4번 안에 못나가면 나갈 수 없다. 그리고 돌아오는 시간을 생각하자면 4대는 너무하다. 인프라가 이렇게 열악하다. 그래서 시골은 자가용이 필수다.
운전을 무서워하던 아내가 시골에 와서 면허를 취득했다. 시골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다. 면허를 따기에도 제 격이다. 초보운전은 로드킬만 조심하면 된다. 주차도 대부분 제멋대로. 갓길에 바짝 붙여 새우는 건 양반이다. 양방향 2차로가 대부분인데 갓길도 아니고 한 개 차로를 막고 그냥 주차를 끝냈다고 볼 일을 보러가는 사람들도 많다. 뒷차는 중앙선을 넘어가야만 한다. 워낙 차가 없으니 가능한 일이다. 초보에게는 천국이다. 주차가 어렵다는 아내도 주차를 적당히 해도 되니까.
그래서 운전이 너무 편하다. 운전이 즐겁다. 앞이 막히지 않아서 시원하다. 야간운전도 네온사인과 앞 차량의 후미등으로 눈이 괴롭지가 않다. 시골에서 마주치지 않아서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이 교통체증이다. 한적한 시골도로, 앞에 차가 3대 이상 늘어서면 교통체증이라는 어느 섬의 이야기처럼, 그 정도까진 아니라도 마음이 편한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달까?
아, 하지만 야간에는 동물들을 꼭 조심하자!
나는 어제도 집 앞 도로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너구리를 만났으니까.
※시골 도로는 해가 지면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간혹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운전하세요. 가로등이 없고 옷도 어두운 색을 입으면 정말 안보여요. 초행길이라면 꼭 여유를 가지고 운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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