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그것은 사랑이다.’ 이 문장에서 닭은 요리되어있는 상태를 말한다. 내가 시골에 내려온 이유 중에 하나가 후추와 율무의 복지였다. 마당있는 집. 목 줄 없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자연을 제공하고 싶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집은 동물복지 계란을 사먹는다. 동물복지란, 자연방사란, 되도록 난각번호의 끝자리가 ‘4’가 아닌 계란을 구입하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으니 생략한다.
죽지 않은, 살아 움직이는 닭. 요즘 도시의 아이들이 닭을 처음 접하는 것은 백숙이나 후라이드 치킨이다. 살아 움직이는 닭이 아니라 요리가 된 닭을 가장 처음 접하게 된다. 시골에서는 마을마다 다르겠지만 마을에 한 두 집 정도는 닭을 키운다. 최근 들어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어느 동네나 닭을 키우는 집이 한 집은 있다. 그래서 살아있는 닭과 마주친다.
귀촌했던 첫 집 마당 한 편에 닭장이 있었다. 너무 낡아 스러져가는 닭장이었다. 닭을 키워보고 싶어서 닭장을 새로 지었다. 그리고 청계 병아리 9마리를 데려왔다. 처음에는 박스에 전구를 켜주고 키우다가 닭장으로 서서히 옮겼다.
내가 처음으로 접한 살아있는 닭은 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 작고 보드랍고 어딘지 서글픈 울음소리에 발걸음을 항상 붙잡게 만들던 그 병아리들. 이 병아리들은 사실 수평아리들이다. 병아리 감별사가 병아리들을 감별해서 수놈으로 판별하고 나면 이제 이 병아리들은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알을 낳지 못하는 닭은 종계닭이 아니고서야 가치가 없다. 그들은 수평아리들은 다짐육이 되거나 거름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일부가 초등학교 앞에서 팔리는 것이다. 가끔 암평아리가 나오는 것은 감별사의 실수다. 암평아리는 결코 동전으로 거래되지 않는다. 율곡 이이 선생님이나 퇴계 이황 선생님은 기본으로 나와줘야 한다.
아무튼 이 병아리들은 태어난지 며칠 내지는 몇 주가 된 녀석들이라 체온조절을 못 한다. 어미 닭의 품에서만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초등학생들이 병아리를 사오면 대체로 일주일도 안 되어 죽는 이유가 온도 유지 때문이다. 전구 하나만 켜줘도 이 병아리들의 생존율이 급격히 올라간다. 아무튼 나는 초등학생 때와는 다르게 9마리를 모두 성조로 키워냈다.
성조가 된 닭들의 비율은 수놈 4마리에 암놈 5마리. 보통 닭장에서 수놈은 한 두 마리면 충분하다. 이상적인 비율은 1:4 또는 1:3이라고 한다. 그래서 두 마리를 해결해야 했다. 가장 크고 우람한 수컷을 종계닭으로 선정하고 가장 볼품없는 숫컷 2마리를 잡았다. 도저히 직접 손질은 못 하겠다 싶어서 읍내에 닭집으로 연락을 했다. 돈을 내고 손질된 닭고기를 받아왔다. 닭도리탕을 했다. 나에겐 조금 비리고 질겼다. 조금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남기면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로 달걀을 잘 받아 먹다가 이사를 하면서 닭들을 모두 분양보냈다.
지구 상에 인류가 80억 인구라는 것은 다들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예전에 유행했던 숫자송에서 60억 지구라 한 것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80억이란다. 그런데 닭은 몇 마리일까? 닭은 지구에서 230억만 마리가 살고 있다. 사람 보다 3배 많다. 돼지 등의 가축은 지구 상의 모든 포유류의 60%를 차지한다. 지구상의 모든 조류 중에서 닭, 오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70%다. 전세계 농경지의 80%가 가축 사료 재배용이라는데 사실 믿겨지지가 않는다. 더 놀라운 통계는 포유동물 중 야생동물은 3%밖에 없다는 점.
나는 양념치킨이 좋다. 나는 비건도 베지테리언도 아니다. 하지만 대체육이 나오기 전까지는 내가 조금만 닭을 덜 먹고 고기를 덜 먹어야 다음 세대가, 다른 동물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믿는다.
하아, 치킨, 그것은 사랑이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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