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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12 : 너구리

by 구루퉁 2020. 11. 25.

 우리 부부가 너구리를 처음 본 것은 처음 귀촌을 하러 내려온 봄. 당시 집 뒤편에 폐가가 하나 있었는데 옥상에 올라가 캄보디아에서 사온 해먹을 설치하던 우리는 폐가에서 너구리를 발견했다. 들개와는 확연히 다른 이미지. 눈두덩이가 거뭇거뭇하고 날렵해보이는 몸이 아니라 오동통통한 몸통을 가지고 있으며 꼬리가 허스키처럼 통통한 것이 국내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시고르자브종 개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 폐가는 길고양이들의 안식처인지라 매일 사료를 상납했었고, 우리집 강아지들 후추와 율무는 길고양이가 우리집 담벼락을 넘는지 안넘는지 옥상에 올라가 감시하고는 했다. 그곳 폐가의 마루 한켠에서 나타난 한국 너구리. 처음에는 저게 뭐지 싶었는데 곧 한국너구리라는 것을 깨닫았다.

 한국인이라면 너구리라는 말에 라면이 떠오르는 것이 첫 번째고 롯데월드의 너구리 캐릭터가 떠오르는 것이 두 번째 아니던가. 요즘에야 보노보노의 너부리를 더 쉽게 떠올리겠지만 모두 한국 너구리는 아니다. 그것은 미국 너구리라 불리는 라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너구리는 백이면 백 라쿤이다. 한국 너구리는 꼬리에 줄무늬가 없다. 그리고 개과 동물이다. 라쿤은? 라쿤은 라쿤과 동물이다. 과가 다르다. 전혀 다른 동물이라는 뜻이다.

이녀석이 라쿤이다.  Photo by Ali Kazal on Unsplash

 재밌는 점은 한국에서는 라쿤을 미국 너구리라 부르고 미국에서는 너구리를 라쿤독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라쿤이 너구리를 닮은 동물이라 부르는 것이고 미국에서는 너구리를 라쿤을 닮은 동물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만큼 서로 닮았다. 너구리는 귀여운 외모와 달리 사실은 위험한 동물이다.

진도개가 잡은 너구리 / Photo by 대한민국 국견협회

 첫 번째로 야생 개과 동물은 광견병의 위험이 있다. 두 번째로 썩은 고기도 마다하지 않고 먹기 때문에 너구리의 손발톱이나 이빨을 통해 상처가 나면 굉장히 위험해진다. 때문에 반려견과 산책하다가 너구리를 마주쳤다면 쫓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Photo by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폐가 뒤에서 나타난 너구리는 한 동안 햇볕을 쬐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우리 부부가 다시 너구리를 마주한 것은 다른 동네로 이사한 뒤였다. 집에서 읍내로 나가는 길 중 야트막한 산을 넘어가는 지름길이 있는데 그곳에서 너구리 부부를 마주쳤다. 야간이라 차량 전조등에 비쳐진 너구리는 너울너울하는 느낌으로 뛰어갔다. 알 수 없는 웃음이 상기된 우리 부부 얼굴 위에 떠올랐다. 그 뒤로 너구리 삼형제(?) 삼남매(?)를 마주치기도 했다. 너구리를 마주할 수 록 나는 너구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게 되었다. 너구리, 알수록 매력있다.

 우리 부부는 너구리를 어찌나 좋아하게 되었는지 너구리를 발견한 곳을 너굴골이라 부르고 너굴골을 지날 때는 꼭 좌우를 살펴가면서 천천히 운전을 했다. 야간에 운전을 하다가 앞 서 가는 차를 발견하게 되면, ‘, 오늘은 너구리들이 다 도망갔겠군.’, ‘오늘은 텄네, 텄어.’하며 아쉬워하기에 이르렀다. 너구리가 나타나는 1분여 남짓은 우리 부부에게 굉장한 이벤트였다.

 하지만 이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로드킬이겠다. 작년, 이맘때 즘 우리 부부는 너굴골을 지나다가 차를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길 한 가운데 죽어 있는 너구리. 방금 치인 것인지 농약이라도 잘못 먹은 것인지, 사체는 멀쩡했고 주둥이에 피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장갑을 끼고 너구리를 길가의 수풀로 치워주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너구리를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 너구리가 죽은 너구리라니. 그 뒤로 너굴골을 지나다가 혼자 남은 너구리와 마주쳤다. 우리 부부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너구리 부부 중 혼자 남은 너구리의 겨울.

 

집으로 들어가는 도로에서 마주친 너구리

 최근 집 앞에서 세 번이나 마주친 너구리가 있다. 올해 태어난 너구리인지 아직은 조금 작고 통통한 너구리.

너구리야,
어쩌면 이 길은 너의 선조들이 지나다니던 길이었겠지만
지금은 위험한 차들이 많으니
겨울잠을 자기 전까지 차 조심하고
내년에 꼭 다시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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