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라는 정겨운 단어를 들었을 때 차가운 공기와 함께 떠오르는 공감각적 사운드가 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댁에 간다거나 시골에 있는 친척집에 가면 대부분 저녁 무렵이었다. 시골 동네에 어귀에 차가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연쇄적으로 울리는 그 소리가 있다.
개 짖는 소리다. 한 놈이 짖기 시작하면 가까운 개부터 짖기 시작하여 온 동네 개들이 다같이 짖어대는 통에 마을에 누가 왔는지 대번에 티가 났다. 마루에 앉아서 고구마 따위를 주워 먹고 있노라면 또 다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그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척들이 도착했나 보다 했다.
시골에서 개들은 대부분 용도가 정해져 있다. 집을 지키는 것이 첫 번째요, 두 번째는 복날 보양식이 되는 것. 복날이 지나고 동네 개들 중에 보이지 않는 녀석이 있으면 명복을 빌어주곤 했다. 어렸을 적에도 큰 집에서 설날에 봤던 개가 추석엔 없어지기도 했다.
이런 개들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묶여있다. 튼튼한 쇠줄로 된 개줄이 시멘트 마당 한편에 박힌 쇠말뚝에 연결되어 있다. 1m 견생. 길어야 2m.
그런 개들이 강형욱씨가 TV에 나온 뒤로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시골에도 산책하는 진돗개들, 제법 된다. 어쩌면 혈통이 있는 진돗개일지도 모른다. 시고르 자브종이 산책하는 모습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후추와 율무는 하루 2번 정도의 산책을 한다. 개들이 묶여있는 집 앞을 지나면 후추와 율무는 좀 으쓱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개들과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잘 보지 못하고 지나치던 꽃들이나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찾아내기도 하고 차를 타고 지나다닐 땐 느끼지 못했던 풍부한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런 우리 부부의 모습이 마을 사람들에게 용기가 되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이상하지 않은 행동이었는데 시골에서는 좀 별난 행동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이 강아지를 끌고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푸들이나 시츄같은 애완견들이 주로 보였다. 시간이 좀 지나자 진돗개들이 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묶여있는 개들이 있다. 시골사람들은 애완견은 산책을 시켜야 하지만 식용개나 집지키는 개는 산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적어도 품종견은 산책을 시켜 보려는 시도나 노력들이 보이지만 시고르 자브종으로 불리우는 시골 잡종견은 시도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 마을로 이사오기 전 옆집 할아버지가 키우던 바둑이가 생각난다.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맹렬히 짖다가도 할아버지가 나오면 꼬리를 치던 녀석. 후추나 율무보다도 덩치가 작아서 귀여웠던 그 친구는 자기와 같은 무늬의 턱시도 고양이와 밥을 나눠 먹기도 하는 착한 녀석이었다. 어느 날엔가 바둑이가 우리를 보고 맹렬히 짖다가 그만 쇠줄이 풀려버린 일이 있었다. 쇠줄이 풀리자 녀석은 몹시 당황해서 안절부절하더니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웃픈 일이었다.
바둑이는 줄을 풀어줘도 도망을 치지 못했다. 한 번도 산책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무서웠을테지. 반면에 율무는 집 대문이 조금만 열려있어도 쏜살같이 뛰어나가 온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본 후 천천히 집으로 돌아 온다.
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TV 프로그램을 알 것이다. 우리는 ‘세나개’를 통해서 개들이 산책을 하면 많은 문제들이 없어지고 행복해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우리가 개들과 다른 점은 도덕성과 지식, 그리고 그것들을 토대로 행동하는 힘이다.
식용견이든 애완견이든
어차피 왔다가는 세상이다.
개들의 짧은 생에,
이제 우리 산책이라는
찰나의 자유를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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