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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15 : 기르고냥(길고양이)

by 구루퉁 2020. 12. 21.

안의 그림은 조지운의 유하묘도(柳下猫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

 

  길고양이, 도둑고양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존재 자체로 도둑 취급을 받는 고양이. 지금은 길고양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제 시고르자브종에 이어 기르고냥(: 길고양이)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3~4년 정도. 사는 곳이 도시의 틈새이다 보니 로드킬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잦다. 또한, 길에서 먹이를 구하다 보니 사람이 먹다 버린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 음식물은 나트륨 함량이 높고 고양이에게는 꽤나 기름지다. 선천적으로 신장이 약한 동물로 태어난 길고양이들은 이 때문에 염분이나 화학조미료로 인한 체내 영양 불균형에 시달린다. 음식물쓰레기를 뒤져 생을 이어가는 이 고양들은 주로 신부전증이나 요도결석, 신장질환에 결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득신의 풍속화, 파적도

  시골에 내려와서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처음으로 마당에 테이블을 놓고 고기를 구웠다. 고기를 몇 점 먹을 때쯤 별안간 율무가 맹렬히 짖어댔다. 고개를 돌리자 담벼락에 고양이들이 있었다. 삼색이와 턱시도 고양이었다. 강아지들을 집안으로 들이고 고양이에게 고기 몇 점을 주었다. 처음에는 경계하는 듯하더니 담벼락 위에 식은 고기를 몇 점 올려두자 냉큼 물어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녀석들에게 몇 번 밥을 주었다. 나보다 이 동네에 먼저 살기 시작했고 내가 이사 오기 전까진 이 집의 주인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호의를 베풀었다. 그리고 그 호의는 둘리가 되고 곧 권리로 변했다. 고양이들이 담벼락에 앉아서 밥을 달라고 시위를 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고양이 사료를 사서 상납하기에 이르렀다.

왼쪽부터 머스탱(콧수염), 삼색이, 미삼이(미모의삼색이라는 뜻)이라고 부르던 고양이들.

  해가 질 무렵, 하늘이 어스름해지면 고양이들이 하나 둘 담벼락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들의 시간이라고 눈빛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강아지들을 집안으로 들였다. 고양이들은 강아지들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담벼락에서 내려와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마당에서 밥을 주었던 것은 동네 사람들한테 혼날까 봐서였다. 집 건너편이나 골목어귀에 고양이식탁을 차릴 수도 있었지만, 우리 골목은 죄다 팔구십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뿐이라 고양이를 내쫓거나 해코지를 할까 봐 마당에 밥상을 차려준 것이다. 삼색이와 턱시도는 새끼들까지 낳아와 십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우리 집 담벼락 넘나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고양이들 하나하나에 이름 붙이고 구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녀석들이 고정 멤버이고, 나머지는 가끔 와서 얻어먹는 고양이들이 많았다.

  이제 삼색이는 먼저 다가와 인사하는 냥이가 되었다. 턱시도는 단 한 번도 곁을 내어주지 않았지만 꽤나 친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하루는 밤 사이에 턱시도를 따라 아깽이 하나가 담벼락을 따라 내려온 모양이었다. 아침이 되면 마당은 개들의 시간이라는 규칙에 따라 해가 뜨면 고양이들은 모두 마당을 비우고 담벼락 넘어로 사라졌는데 율무가 아침부터 마구 짖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마당 한 켠 풀숲에 숨어 떨고 있는 턱시도의 새끼를 발견할 수 있었다. 턱시도는 담벼락에서 안절부절, 나는 새끼를 잡아다가 고이 담벼락 위로 올려주었다.

  어느 날엔가 밭 너머 대나무숲 쪽에서 삼색이의 새끼 중 한 녀석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있는 것을 보았다. 쥐약이나 농약을 먹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런 것을 먹은 쥐를 잡아 먹었겠지. 마을 사람들이 고양이를 잡으려고 놓은 것은 아닐 것이다. 시골에서는 쥐를 잡으려고 쥐약을 놓거나 밭에 쓸 농약들이 흔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다른 새끼들이 건강하기를 바라면서 마당에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의 숫자를 헤아려 볼 뿐이었다.

덩치가 작은 녀석들이 턱시도의 새끼들이고 조금 큰 아이들이 삼색이의 새끼들이다.

  어디에 살든 동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고양이 하나쯤은 있다. 과거엔 도둑고양이였고, 지금은 길고양이이며 최근엔 기르고냥이 된 고양이의 삶을 생각해 본다. 나는 이제 이사를 해서 보지 못하지만, 삼색아, 오래오래 살아남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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