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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16 : 버드 피딩

by 구루퉁 2020. 12. 24.

  미스터선샤인에 변요한(김희성 역)이 하는 대사 중에 정말 심쿵하게 만드는 대사가 있다.

 

 “나는 이리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뭐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우리 부부는 참 작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는데, 작은 장식품이라거나 오르골, 예쁜 유리잔 등 크게 쓸데는 없는데 예쁜 것들을 좋아한다. 이것이 도시에서의 취미였다면 시골에서는 동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도시에서는 마주침이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귀촌 후에 첫 번째 집에서는 고양이들이 우리 부부의 생활 속으로 훅 치고 들어왔다면 두 번째 집인 지금 이곳에서는 산새들이다.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다섯 번째에서 를 소개한 바가 있다. 여러 산새들과 강에 사는 새들을 소개했었다. 이제 우리 부부의 취미생활은 버드 워칭에서 나아가 버드 피딩으로 가게 되었다.

Photo by Cathal Mac an Bheatha

  최초의 버드피딩은 의도치 않게 블루베리 나무가 되었다. 우리가 먹을 요량으로 사온 블루베리 나무에 새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블루베리 나무를 새들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다가오자, 새들에게 모이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드 워칭이 새들을 관찰하는 것이라면 버드 피딩은 워칭에서 더 나아가 모이를 주면서 새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워칭은 자연을 관찰하며 직접적인 개입을 하는 일이 없지만 피딩은 조금의 개입이 되기 때문에 생태계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버드 워칭이나 버드 피딩 모두 관찰을 기본으로 한다. 새를 잡아서 키우거나 하는 일은 없다. 워칭보다 피딩이 가까이서 관찰기가 좋기때문에 하는 것이다. 누가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은 최소한이 되어야만 한다는 규칙을 스스로 마음에 새기고 피딩을 시작했다.

아내가 유리창에 달아둔 버드피더. 오주문으로 인해 유리창에 부착하는 버드피더가 왔다.

  제일 먼저 아내가 한 일은 모이통을 사는 일이었다. 우리는 프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싶은 사람들이라 이 모이통 하나를 사는데도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튼튼하고 오래 쓸만한 피딩에 적합한 모이통들이 모두 플라스틱이었던 것. 우리는 집 처마나 울타리에 모이통을 달아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문실수로 인해 유리창에 부착하는 모이통이 왔다. 이것은 조금 더 피딩 레벨이 높다. 아직 이 동네 산새들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유리병을 세로로 잘랐다. 그리고 그 안에 모이를 부어주고 정원 테이블에 두었다. 한 달이 지나도록 모이는 그대로였다. 이곳에 먹을 것이 있고 안전하다는 소문이 나야만 새들이 오는데 최초의 새가 오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알리익스프레스로 모형 새를 주문해보았다. 이것은 유인새라고 하여 새들을 안심시키는 용도이다. 그런데 이 모형 새는 두 달이 넘도록 배달이 되지 않고 있다.

  아내가 새로운 정보를 찾아왔다. 개활지 같은 트인 곳에는 새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는단다. 그리고 잘 정돈된 정원에도 새들이 잘 오지 않는다고 한다. 수풀이 우거지거나 가지가 많은 나무 사이에 새들이 주로 앉는 이유였다. 나는 집 근처에 쓰러진 아카시아 나무를 일부 베어서 울타리에 매달았다. 아내가 안 쓰는 용품 중에서 자동차 앞자리 시트 사이를 막는 그물망으로 나무에 유리병을 두었다. 그렇게 또 보름이 흘렀다.

  블루베리를 먹으러 우리집에 오는 새들이 많았기에 버드 피딩이 쉽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달 가까이 새들이 오지 않았다. 이제 아침마다 유리창을 통해 새들이 오는지 지켜보는 일이 없어졌다.

거실 창 앞에 누워앉아 버드워칭을 할 수 있어 좋다. 비오는 날에 화분을 모두 내어둔 상태. 새들은 오히려 이렇게 너저분한 환경이 되어야 안심을 한다고 한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동영상이었다. 새운 새라도 발견했나? 동영상을 플레이하는 순간 기쁨이 샘솟았다. 드디어 새가 왔다. 아내가 어제부터 박새 한 마리가 나무에 기웃거렸다고 하더니 오늘은 박새가 그 나무에서 모이를 가져가는 영상을 보내왔다. 이게 뭐라고 기쁨이 밀려오는지. 드디어, 드디어 와주었어!

, 이 작고 무용한 새들이 무료하고 지친 일상에 작은 활력이 되었다.

 

아내가 보내온 영상, 박새가 모이를 가져가고 있다.

  내일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나무에 새집을 달아줘야겠다. 음식 포장을 받으면 항상 딸려오던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집이지만 이제 그 집에 새들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봄이 되면 정원에 나무를 많이 심어야겠다.

아내가 보내온 영상, 나무젓가락으로 만들어둔 새집에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내일은 새집을 달아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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