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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18 : 제설

by 구루퉁 2020. 12. 30.

  제설 작업을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군대다. 당시 강원도 화천에 있는 부대에 복무했는데, 최전방이다 보니 눈이 오면 1000고지까지 눈을 쓸어야 했다. 북한이 언제 처들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방어진지까지 즉각 출동을 할 수 있도록 눈을 쓸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논리는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은 납득하지 못했던 것 같다. 힘들었다. 평지에 내린 눈을 쓰는 것도 힘든데 산을 타며 눈을 쓸어야 한다니. 늘 제설 작업에는 가용 부대 인원이 모두 투입되었다. 땀범벅이 되어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초대형 거인처럼 온몸에 하얀 김을 내뿜으며 부대에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작년엔 눈이 오지 않았다. 2019년의 겨울은 사실 온화한 편이었다. 그래서 눈이 안와서 눈 싸움을 할 수 없다는 푸념을 들었다. 아내가 자주 가는 프랑스자수 공방 선생님의 막내 딸아이의 푸념이었다. 다행인줄 알어. 눈이 오면 얼마나 고생인데. 그렇게 생각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 순간 늙은 아저씨가 된 기분이었다.

아침에 문을 열자 눈 쌓인 마당이 보인다.

  2020년의 겨울, 눈이 내렸다. 아침에 문을 열었는데 하얀 눈세상이 펼쳐졌다. 아이쿠, 큰일이다. 회사에 지각하지 않으려면 재빠르게 눈을 쓸어야 한다. 현무암 데크 위의 눈을 쓸어내리자 빙판이 나타났다. 차가 있는 곳까지 최대한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쓸어냈다. 발자국이 남으면 잘 안 쓸리니까. 차량에 히터를 켜두고 차 유리의 눈과 얼음을 긁어냈다. 우리 마을의 도로는 군청의 제설계획에 포함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다행히 지각은 하지 않았다.

  작은 마을의 길은 군청에서 제설을 해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 집 앞의 눈은 내가 쓴다가 기본이기는 하다. 강을 따라 난 제방길을 나오면 차량 통행으로 조금은 녹은 눈길이고, 마을을 두어 개 지나가야 제대로 제설 된 도로가 나온다. 집에서 나올 때와 들어갈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소리다. 지난 번 겨울에 길이 얼어서 마을 다리 앞에서 차가 강으로 빠져버렸다는 마을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곳에서 제설은 조금 생존에 가까운 일이다. 도시에서 제설은 집 앞만 치우면 크게 위험한 일은 잘 없다. 때문에 눈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제법있고, 그냥 길이 더러워진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곳은 구불거리는 길과 조금만 잘못하면 강으로 빠지거나 논두렁으로 차가 곤두박질 치는 그런 곳이다. 설경과 낭만은 잠시뿐이다.

집 입구에 놓아둔 토끼 조형물 (아내가 보내온 사진)

  군청의 제설계획은 어찌보면 잘못된 점이 많다. 그것은 도시도 그러하다.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러워진다. 여기서 길이란 사람이 다니는 보도와 차가 다니는 도로이다. , 그렇다면 보도와 도로 중에 어디를 우선적으로 제설해야 할까?

  첫 번째, 차를 이용하는 사람들 보다 보도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두 번째, 눈길에서 나는 사고는 차량사고 보다 보도에서 미끄러져 다치는 사고가 더 빈번하다. 세 번째, 차량사고로 인한 재물피해 보다 눈길에 사람이 다쳐서 나가는 병원비용이 더 크다. 네 번째, 차량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눈길 사고가 생명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위의 사실로 인해서 우리는 도로보다 보도를 우선하여 제설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도시 제설계획은 도로에 우선해 있다. 아마도 제설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차량 이동을 많이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보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예컨대 남자들이 밖에서 일하는 동안 여자들은 집에서 논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집안 일을 노동으로 치부하지 않는 것처럼, 보도 이용자의 부상이나 배려는 가치에서 제외된 것처럼 보인다.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된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의 <보이지 않는 여자들>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사례가 등장한다. 좋게 이해해준다면 도로제설이 되어야만 구급차나 소방차 등의 사회 필수 요인들이 작동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비상도로 제설 후 도보제설을 가장 우선해야한다. 또한 사람이 적게 사는 마을 앞이라도 제설이 진행되야 한다. 사람이 적게 산다고 구급차가 오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을이 작다고 생명의 가치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니까.

창문을 통해 눈이 내린 것을 확인하고는 늦장 부릴 틈도 없이 일어나야 했다.

  시골은 보도도 도로도 구분이 잘 되지 않고 사람이 많이 사는 곳, 많이 다니는 길만 제설이 되는 터라 푸념을 좀 늘어놓았다. 도시 계획이나 제설 계획을 세울 때 소외되는 작은 마을도 고려해주면 좋겠다. 제설에 투입될 자원과 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믿어 본다.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지만. 지난해에 빙판이 된 도로에서 차가 미끄러지는 경험을 한 뒤로 눈길 운전이 조심스럽다. 퇴근길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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