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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09 : 다리가 잠기면 고립되는 마을

by 구루퉁 2020. 11. 19.

 오늘은 비가 내린다. 간만에 시원하게 쏟아지니 기분이 좋기는 개뿔, 양파 밭이 걱정된다. 외부수돗가에 수도꼭지가 고장나서 양갈래 수도꼭지로 교체하려고 주문을 해두었다. 그간 양파들은 목이 말랐을테지. 흙은 푸석해지고. 그래서 어제 비가 내리는 걸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장마철 비처럼 장대비가 쏟아진다. 다행히 양파밭에 볏짚으로 덮어줘서 굵은 비를 맞고 어린 양파가 쓰러지진 않을 것 같다. 으쓱, 나도 이제 시골 생활 4년차. 제법 양파밭 걱정도 할 줄 안다. 대부분 실제 농사꾼들은 하지 않는 걱정인데 내가 어설프다 보니 하는 걱정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남들이 보면 양파밭 몇천 평 하는 줄 오해할 것 같은데, 마당 한 켠에 모종 한 판 정도 심어둔 것이 전부다.

우리집 텃밭 photo by 구루퉁

 올 해 여름은 장마가 참 길었다. 뉴스에서 강이 범람하여 물에 잠긴 마을들도 꽤 나왔다. 도시에 살 때는 정말 먼 이야기였다. 도시에서 물난리는 강남역이 물에 잠기려고 한다와 같은 이야기인데 강남역에 안가면 무관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사는 마을은 해마다 다리가 물에 잠긴다. 다른 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 마을은 배산임수의 지형인데, 강을 건너는 다리가 좀 낮다. 그래서 비가 이틀을 넘어 삼일을 연속으로 내리면 다리 위까지 물이 찰랑거리기 일쑤였다. 초봄에 이사를 왔기에 다리가 물에 잠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후추와 함께 마을 다리에서 photo by 구루퉁

 충북에서 몇 안되는 고립지역. 굉장한 촌구석으로 보이겠지만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그냥 지형이 그럴 뿐이다. 아무튼 첫 해에는 비가 두어 번 정도 다리가 잠겼고, 하루면 물이 빠졌다. 일 년에 두어 번이면 못살 것도 없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올 해는 정말 비가 많이 왔다. 회사에서 업무를 보다가 갑자기 다리가 잠길 것 같다는 아내의 연락에 급히 장을 봐서 집으로 들어간 적도 있다. 오전 정상출근, 오후 재택근무였다. 어떤 날은 아내가 맥주를 마시고 싶다하여 둘이 함께 편의점(차로 15분거리)으로 차를 타고 나섰는데 돌아와 보니 다리가 잠겨있었다. 굽이치는 산길로 돌아돌아 가는 방법이 있어 집까지는 겨우 들어갔지만 맥주를 마실 기력도 남아있지 않게되어 그냥 잤다.

이정도면 아직은 지나갈 수 있다 바퀴정도는 잠기겠지만 photo by 구루퉁
이젠 위험하다. 저 물 속에는 사실 자갈이나 돌들도 휩쓸려 가고 있다. photo by 구루퉁
어쩌면 배산임수는 위험할 수도 있다. photo by 구루퉁

 그렇다 완전한 고립지역은 아니다.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산길이 있다.그래서 나는 올해 SUV 4륜으로 차를 바꿨다. ‘에이~ 뭐야, 싱겁게.’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무인도에서 생존기를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그런데 그 산길이라는 곳이 어마어마한 경사와 코너, 더구나 외길인데 토사가 밀려오기도 하고 나무가 쓰러지기도 하는 위험천만한 곳이다. 마을사람들도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그 길로 가지 않는다. 산길로 갈 때 마다 나는 마주오는 차가 없기를 빌었다. 새로 산 차는 벌써 나뭇가지에 문짝들이……. 그냥 하소연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마을 사람들이 군청에 민원을 넣었다고 한다. 윗집 아주머니는 일 년에 몇 번이나 잠기냐며 낮은 다리가 고즈넉하고 우리마을에 어울려 마음에 든다했다. 아내도 처음엔 고립이 된다며 난리였지만 윗집 아주머니 말처럼 낮은 다리를 마음에 들어한다. 그런데 도청에서 우리마을에 다리를 놓으라고 지원금이 나왔다는 뉴스가 났다.

올해는 정말 비가 많이와서 사진에 나오는 후추가 있는 곳까지 물이 들어찼었다. photo by 구루퉁

 몇몇 사람은 다리가 생기면 집값이 오른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다리를 놓으려면 공사를 한다고 자연을 파괴할 테고, 얼마 전 발견한 수달이 사는 곳도 파괴될 테다. 내가 구해준 자라는? 왜가리와 백로는? 꼬리꼬리를 물고 드는 생각들은 사람이 아닌 동물들이었다. 나는 이 마을이 생태계가 꽤나 안정되어 다양한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좋아했다. 다리를 꼭 놓아야 할까? 너무 사람 생각만 하는 건 아닐까? 다리를 놓더라도 우리가 생태계를 망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조심하면 좋겠다.

어휴, 그래도 밤낮없이 몰려드는 낚시꾼은 조금 줄겠네.”

자라를 발견한 율무 photo by 구루퉁

귀농이나 귀촌을 고려하시는 분들이 축사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보다도 지형도 잘 살펴보시고 시내나 읍내로 나가는 길도 한 번쯤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 다리가 잠긴 사진은 오늘자 사진이 아니에요. 올해 장마철에 찍은 사진이랍니다. 모두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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