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17화
- 여름의 문제
어서와, 시골 여름은 처음이지?
메추리를 부화시키고 돌보는 사이 슬그머니 여름이 다가와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한 점 바람이 자주 간절했고, 얼음을 얼리는 횟수가 늘었다.
재작년쯤 비가 새서 올렸다는 지붕이 옥상 바닥을 대신해 열을 흡수해주는 덕에 집 안의 공기가 서늘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대문 바로 위에 처마가 있어서 현관으로 강한 햇빛이 들이치지 않기도 했다. 온 집의 창문이며 문을 다 열어두면 통풍이 잘 되어서 우리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은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시골집에서 더위 그 자체 때문에 겪는 고통은 생각보다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골의 여름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종류의 고통을 선사했다. 도시, 그리고 빌라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강도의 문제 - 바로 날벌레였다.
물론 도시에도 날벌레는 있다. 하지만 시골에는 사람이 적은 탓인지, 날벌레가 많은 탓인지, 아니면 사방이 온통 풀로 둘러싸인 탓인지 이들과 부대낄 일이 더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초파리가 꼬이는 쓰레기봉투는 이미 집 밖으로 내놓은 지 오래였다.
한동안은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는데, 날씨가 서서히 무더워질 무렵부터 자주 보이던 파리들이 이제는 집 안으로 들어와 왱왱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다. 방충망을 쳐 두었는데도 그랬다. 방충망에 우리가 모르는 틈이 있기라도 한 건지, 우리가 집 밖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를 틈타 들어오는지 자꾸만 파리가 늘었다. 파리들은 온종일 집안을 돌아다니며 왜앵, 왱 우리 심기를 건드렸다. 뿐만 아니라 파리들은 주방이나 강아지 용품 위에 앉아 내 인내심을 시험했다.
처음에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방충망을 열고 팔을 휘저어 파리가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나도 여러 마리 파리가 끊임없이 날아다니며 거슬리는 소리를 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다리 많은 친구들에 이어 날개 달린 이 친구들에게도 결국 전기 파리채를 집어 들게 된 것이다.
팟, 파밧!
파리를 향해 어설프게 채를 휘두르던 나는 어느새 백발백중 날아가는 파리를 떨어뜨리는 파리 킬러가 되어있었다. 전기 파리채로 파리를 잡는 데에는 시간과 체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파리끈끈이를 사서 거실과 주방 곳곳에 매달아두었다. 파리가 더덕더덕 달라붙은 모습이 보기에는 좋지 않았지만 일단 파리가 스치기만 해도 착, 붙어버리는 파리끈끈이는 그 비주얼을 참아내게 할 만큼 효과적이었다. 가끔 몸집이 커다란 파리가 달라붙어 왜애앵, 요란한 소리가 나는 것만 빼면 파리끈끈이는 판*스에 이어 시골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사를 오기 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우리가 사는 영동군 황간면은 다른 곳보다 조금 지대가 높아서 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었다. 황간면과 붙어있는 곳이 그 유명한 추풍령. 고개 높이 221m으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분기점인 데다 지명에 ‘바람 풍’ 자가 들어가기까지 하니 이곳에 바람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그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이곳의 여름을 나는 데에는 침대보다 해먹이 제격이었다.
캄보디아 여행에서 사 온 해먹 두 개를 지붕 지지대에 매어 걸고 누워있으면 등 뒤로 바람이 솔솔 불어 땀이 차지 않았다. 풍경소리를 들으며 해먹에 누워 책을 읽고 있으면 바람에 실려 솔솔 단잠이 찾아왔다. 실내와 달리 밖에서는 파리의 공격(?)도 적어 초여름에 쉬는 데에는 옥상 해먹이 정말 딱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좋은 순간도 잠시, 집 안에서 파리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면, 집 밖에서는 모기와의 전쟁이 한창이었다. 우리 집 근처에는 산과 강이 인접해있어 모기가 유독 많았는데 그 많은 모기들이 텃밭농사를 지을 때도 해먹에 누워있을 때도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어 우리 피를 빨아댔다. 그러니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낮에도 밖에 나가려면 긴팔 옷이 꼭 필요했다.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왜 뜨거운 여름에도 긴 바지에 긴 팔 옷을 껴입으시는지, 그 깊은 뜻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는 또 있었다. 바로 여름철 마당에 무성하게 자라나는 풀들. 여름이 되면 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나무가 푸른빛으로 무성 해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산이나 들이 아닌 우리 집 코앞의 마당의 풀들까지 무서운 속도로 자라날 줄이야.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잘 정돈된 정원은 그냥 방치해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몰랐던 나는 얼마나 순진했던가.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들자 우리 집 마당은 잔디밭이 아니라 정글을 방불케 하는 초록빛으로 뒤덮였다. 우리 발목 아래 높이에서 머물던 풀들은 날이 더워지니 빠르게 자라나 돌길을 집어삼켰고 우리 발목 높이까지 올라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풀이 잘 자라네, 싶은 정도였지만 풀들은 멈추지 않고 자라 발목 높이를 넘어서 길을 오가는 우리 다리를 쓸어내렸다.
날벌레와 마당을 뒤덮은 잡초로 인해 우리의 여름은 이제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시골의 여름이라면 에어컨 없이도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도시에서 막연하게 했던 이 생각 또한 참으로 안일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지만 날벌레와 풀에만 온 정신이 팔린 우리는 닥쳐올 또 다른 불행에 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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