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21화
- 기나긴 장마의 시작
시골살이도 비수기
더없이 긴 장마의 시작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집안에서 바깥의 비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시골 생활에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준 야외활동을 할 수 없으니 우리는 한동안 울적했다.
비가 오면 산책도 갈 수 없으니 강아지들도 덩달아 힘이 없었다. 후추와 율무도 창문 밖을 하염없이 쳐다보았지만 해는 좀처럼 뜨지 않았다.
지겹도록 비가 내리다가 오랜만에 해가 나면 그간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고 산책을 가자며 졸라대는 강아지들을 앞세워 축축히 젖은 길을 걸었다. 발이 새까맣게 젖는데도 강아지들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해가 반짝 난 어느 날에는 밀린 빨래를 널고 그간 돌보지 못한 화분을 하나하나 살펴봤는데 늘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활력을 주던 로즈마리가 비실비실 힘이 없었다. 꺾꽂이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로즈마리를 들춰봤더니 줄기 군데 군데 매달린 나방 애벌레가 보였다.
로즈마리를 잠시 방치한 사이에 애벌레들이 진을 친 것이다. 어떻게든 로즈마리를 살려보겠다고 핀셋으로 애벌레를 하나하나 잡아보았지만 잎을 들추면 또 새로운 애벌레가 나타났다. 이 작은 로즈마리 화분에 도대체 애벌레가 몇 마리나 붙어있는지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로즈마리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잎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참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 없고, 허투루 되는 일이 하나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하물며 이렇게 작은 화분도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잎을 살피고 벌레를 잡아주지 않으면 시들어버리는데, 세상만사 모든 일이 딱 내가 관심가진 만큼, 내가 들여다본 꼭 그 만큼만 자라는 거라고 생각하면
세상살이 참 어렵다,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위안이 됐다.
내가 겪은 그 만큼이 곧 내가 된다는 것,
그러니까 그 누구도 내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지금의 나는 과거의 무수한 순간들이 모여 된 나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스쳐가는 이 모든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기분-
장마기간이 시골살이에서 드물게 별다른 재미가 없는 시기이기는 하지만
습하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고 생각하며 우리는 여름의 맛을 담뿍 머금은 자두를 크게 한 입 베어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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