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2화
- 가을엔 겨울준비
에어캡 대신 동백꽃
감이 말라가듯이 가을도 깊어가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그 아래 노란 단풍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아쉬웠다.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있으면 그 풍경이 그렇게 좋다가도 못내 쓸쓸했다. 그래도 바람이 쏴아아- 불어올 때 비처럼 쏟아지는 낙엽이 예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집과 마당을 오가는 나였다.
유난히 날씨가 좋은 날에는 집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가을은 여행하기에도 좋은 계절이어서 대전으로 대구로, 가끔은 서울을 오갔다. 도시는 분주하고 초조해서 늘 나를 설레게 했지만 도시에 갔다 돌아오면 이곳의 한적함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끝끝내 돌아갈 곳이 있어야 진정 여행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겨울의 냄새가 조금씩 짙어지고 있었다.
이곳의 겨울을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가을이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에어캡(흔히 뽁뽁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집안 창문마다 붙이시는 할머니를 보았을 뿐이었다. 겨울을 앞두고 감 말리기로 분주했던 마을이 조금씩 한산해졌다. 시골에서 늦가을은 겨우내 먹을 반찬을 만들거나 추위에 대비하는 기간인 모양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보며 '아, 여기 겨울 장난 아니겠다...' 생각했지만 추울 것은 미래의 나지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추위는 겨울의 나에게 맡겨두고, 우리도 우리 나름 겨울준비를 했다.
우리의 겨울 준비는 단열을 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겨우내 먹을 반찬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목욕탕에 가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덥고 가장 추운 곳은 단연 화장실이었는데, 화장실에서 샤워를 못할 정도의 추위 또는 수도관 동파로 인해 목욕탕을 이용해야 할 일이 종종 있을지 모르니 그전에 답사(?)를 해두고 싶었다.
찾아보니 황간에는 목욕탕이 없었다. 예전에는 있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찾을 수 없었다. 가장 가까운 목욕탕은 영동 시내에 있었다. 여기라도 일단 한 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차를 타고 20km 거리를 달려 목욕탕에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장날이었다. 평소보다 차가 좀 막혔고, 길을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이따 목욕을 하고 나와서 장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1시간쯤 뒤에 카톡으로 연락하기로 하고 남편은 남탕, 나는 여탕으로 각각 들어갔다.
목욕탕은 좀 작았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열탕은 아직 조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서 온탕에 앉아 몸을 녹였다. 온탕에는 나 말고도 할머니 두 분이 더 계셨다. 할머니와 마주 앉은 나는 새댁이냐, 어디서 왔냐, 남편은 뭐 하냐-와 같은 질문공세에 시달릴..... 줄 알았지만 그건 나의 '새댁병'일 뿐이었다.
이곳에 와서 나이가 젊고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어딜 가나 나는 새댁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틈에서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과분할 정도의 애정을 받았다. 그러니 그 사이에 그만 새댁병이 생기고 만 것이다. 묵묵히 목욕을 하시는 할머니를 보며 '별말이 없으시네, 나도 이제 영동 사람 다 된 걸까?'하고 생각했다. 새댁병은 아직 완치되지 않았고, 황간 새댁의 착각은 끝이 없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 30분 뒤쯤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느 때처럼 이번에도, 내가 먼저 나와서 기다렸다. 우리 부부를 살펴보면 항상 내가 더 빠른 편이었다. 어디를 나가기로 하고 준비를 시작하면 늘 내가 먼저 준비를 끝내고 남편을 기다렸다. 성격이 급하기도 하지만 시골에 온 뒤로 준비가 많이 간소해져 빠르면 20분 안에도 나갈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조금 느긋한 타입으로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도 내가 목욕탕 입구에 서서 남편을 기다렸다. 너무 일찍 나왔나, 싶다가도 시계를 보면 그리 일찍 나온 것도 아니었다. 심심하니까 장이나 구경하자 싶어 목욕탕 앞을 서성였다. 목욕탕 바로 앞에는 장날마다 완판을 기록한다는 도넛 집이 있었다. 과연 오늘도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단팥이 든 빵인데, 3시가 넘으면 구하기가 어려웠다. 4시 정도에 오면 가게를 구경조차 할 수 없을 확률이 높았다.
도넛 집에서 몇 걸음 더 가면 장날마다 식물을 파는 좌판이 있었다. 종류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종류가 많은 데는 따로 있었다) 계절마다 꽃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목욕탕 앞에서 좌판이 보이는 거리라 나는 굳이 가지 않고 까치발로 구경했다. 남편은 아직 나올 기미가 없었다.
비슷비슷한 식물들 틈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는 화분 하나가 있었다. 나무처럼 생겼는데, 꽃이 필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가까이서 보니 '동백'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화분을 고르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갑자기 동백나무 한 그루를 들이고 싶어 졌다. 동백 화분 근처를 서성이며 요리 보고 조리 보는 동안 남편이 목욕을 마치고 나왔다. 동백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 말에 남편은 그럼 시장을 한 번 돌아보자며 앞장섰다.
식물을 파는 좌판은 여기 말고도 몇 군데 더 있었다. 이제 동백 철인지 가게마다 동백 화분이 있었다. 동백 종류가 그렇게 다양한 줄, 나는 처음 알았다. 빨간 꽃만 있는 동백부터 꽃잎이 넓은 것, 좁은 것, 색이 흰 것 등 그 종류가 상당했다.
내가 찾는 것은 빨간 꽃잎이 노란 술을 감싸고 있는 동백. 그렇게 설명하자 한 가게에서 화분 하나를 건네받았다.
뻗어 나온 얇은 나뭇가지에 듬성듬성 커다란 잎이 달려있었다. 키는 자그마하고 잎에는 비정형의 흰 무늬가, 꽃봉오리는 여덟 개 남짓. 이름표에는 '유원동백'이라고 쓰여있었다. 왠지 비싸 보여서 가격을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비쌌다. 그래도 동백나무라니, 꼭 하나 갖고 싶어서 홀린 듯 화분을 안고 돌아왔다. 나의 겨울준비인 셈이었다.
동백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 아가씨>. 폐병 때문에 향기 없는 동백꽃으로만 몸을 치장하는 '마르그리트 고티에'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특별히 내게 인상적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꽃도 사람도 한 시절이라 툭, 하고 지는 것들의 덧없음을 나는 사랑하게 되었다. 한창 화려하다 한순간 꽃 전체가 떨어지는 동백처럼 툭, 질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반질반질한 동백잎을 보며 언제쯤 꽃이 필까, 생각했다. 동백꽃이 폈을 때쯤엔 겨울일 것이었다. 겨울을 지독히 싫어하는 나지만 그래도 이번 겨울엔 기대할 것이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동백 화분의 가치는 충분했다.
하루하루 겨울이
가까워왔다.
'시골살이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34 이제, 겨울 - 하지만 봄은 오니까 (0) | 2023.02.15 |
---|---|
33 수리부엉이는 호우호우 운다 (2) | 2023.02.14 |
31 감을 말려요 (1) | 2023.02.11 |
30 여기는 감고을 (0) | 2023.02.10 |
29 갈림길의 오른편 (2) | 2023.02.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