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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34 이제, 겨울 - 하지만 봄은 오니까

by 구루퉁 2023. 2. 15.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4화
- 이제, 겨울 - 하지만 봄은 오니

고양이도 겨울준비


겨울. 낮아면 뒤뜰에서 햇빛을 쬐는 삼색이와 새끼 고양이들. 석양 지는 시간이면 고양이 털이 금빛 실처럼 빛났다.


  보일러 기름을 넉넉히 채우고 겨울 이불을 꺼냈다. 패딩도 언제든 입을 수 있게 세탁소 비닐을 빼고 걸어두었으니 사람의 겨울 준비는 거의 끝난 셈이었다.

  이제 남은 건, 길 위의 고양이들.
  요즘 고양이들은 한낮이 되면 우리 집 뒤편 폐가 쪽 풀숲에 가서 볕을 쬐었다. 새끼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놀았던 유년의 뜰에서 삼색이는 오래도록 평안해 보였다.

  고양이들이 걱정이었다. 올해 겨울도 무척 추울 거라는 보도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많은 길고양이들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넌단다. 삼색이와 턱시도는 겨울을 알겠지만, 새끼들에게는 이번 겨울이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천진하게 잠든 새끼들을 보며 이 아이들이 무사히 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봄을 보여주고 싶었다.  춥고 배고픈 겨울을 견디면 마침내 따스한 봄이 온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뭐라도 해보자 싶어 여기저기 알아본 끝에 찾은 곳은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이하 '고보협')였다. 우리처럼 길고양이들에게 밥과 물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기는 많았는지, 협회에서는 스티로폼 박스로 만들어진 고양이 겨울 집을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라고 해도 가격은 재료값 정도로, 이윤을 남기는 장사는 아니었다.) 겨울 집을 사서 우리 집 거실 창문 앞 공간에 설치해주면 밤만이라도 고양이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을 것이었다.

 

 

  두 개의 고양이집이 도착하기 무섭게 우리는 설명서대로 겨울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커다란 본체 박스에 눈과 비를 막아주는 간이 지붕을 달고, 본체 박스에 뚫려있는 입구 앞도 투명한 플라스틱 커튼으로 막아주었다. 아주 쉽고 간편했다. (뭘 만들라고 하면 전혀 다른 걸 만들어낸 내가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믿어도 좋다.)

  고보협을 통해 어렵지 않게 고양이들의 겨울채비를 할 수 있었다. 아주 작은 문제는 황간의 길고양이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인 고양이집의 크기였다. 고양이 집을 추가로 구매해야 할까, 하다가 여름 동안 쓰려고 옥상에 쳐놓은 텐트에 고양이 거처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바람이 빠져 버리려던 에어매트, 오래 써서 군데군데 헤진 극세사 이불을 텐트 바닥에 도톰하게 깔고, 고양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의 박스를 안에 넣어주었다. 텐트 문을 살짝만 열어놓으면 바람도 더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겨울에는 옥상 테라스를 쓰지 않으니 강아지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계단까지 막아두면, 고양이들이 마음 놓고 쓸 수 있었다.

  옥상에서 아래위를 바라보았다. 현관에 고양이집 두 개와 옥상에 텐트 거처. 이 정도면 고양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었다.

 

 

  우리도, 새끼 고양이들도 처음 맞는 이곳의 겨울. 추풍령의 바람은 매서웠다.

  난방과 단열이 잘 되어 추위를 모르고 지냈던 도시생활이 그립기도 했다.

  그러나 겪고 가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찬란한 가을 끝에 혹독한 겨울이 있고, 그 겨울 끝에 다시, 눈부신 봄이 시작된다는 걸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어쩌면 겨울은 거대한 질문 하나를 안고 와 우리들이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현인 같은 계절일지도 모르겠다고, 아직 스물일곱 번의 겨울밖에 겪어내지 않은 풋내기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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