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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35 달아나 숨거나 끝없이 견디거나

by 구루퉁 2023. 2. 16.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5화
- 달아나 숨거나 끝없이 견디거나

여긴 춥다, 너무 춥다(Feat.에픽하이)


새하얀 눈 위, 첫 발자국의 주인공은 강아지들!


 하루하루 기온이 떨어지다 문득 조금 덜 추워졌다 했더니 눈이 내렸다. 눈은 내릴 때는 세상을 조금 더 포근하게 해주었지만 다 내리고 난 다음에는 전보다 더 차가운 겨울을 돌려줬다. 며칠 안에 혹한이 몰려올 것 같았다. 제일 신난 건 역시 강아지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눈이 조금 쌓이자 신나게 달려가 새하얀 눈에 첫 번째로 발자국을 찍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우리가 무척 잘 지내고 있었던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진지하게 이사를 고려할 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나는 매일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남편은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 헤맸다. 이 모든 것이 겨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우리는 집안에서 파카를 걸쳐 입고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은 추웠다. 그것도 엄청.
  지어진 지 30년 된 집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추웠다. 보일러를 틀어도 바닥만 조금 따뜻해질 뿐 공기는 전혀 데워지지 않았다. 어디로 새어드는지 모를 웃풍은 조금 남아있는 집안의 온기도 식혀버렸다.

  아침이면 코가 시려서 깼고, 추워서 움직이기가 싫었다. 더위처럼 추위도 잠을 못 자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가장 추운 곳은 화장실. 바람이 들이치는 방향으로 창이 나있고 환풍기 때문에 공간이 완전히 밀폐된 것이 아니라서 냉기가 술술 들어왔다. 샤워는커녕 얼굴을 씻는 일에도 각오가 필요했고 변기에 앉아있으면 다리가 저절로 떨렸다.

  그래서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가는 상대방에게 우리는 진심 어린 격려의 눈빛을 보낼 수 있었다. 순도100%의 애정, 이었다.

 

  추위는 집중력을 흩트리고, 생활 반경을 줄였다. 일도 일이지만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 역시 추위에 시달려 늘 피곤하고 날이 서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남편이 선언했다. 남편이 찾은 해결책은 온풍기. 공기가 데워지지 않는 것이 추위를 심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니 공기를 데울 수 있는 온풍기를 사용해보자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공기만 따뜻해도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반신반의하며 온풍기를 샀다. 효과는 확실했다. 온풍기가 데운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공기 덕분에 하나도 춥지 않았다.

  딱 온풍기 근처에서만.

  그나마 이제 코가 시려 깨는 일은 없을 테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온풍기의 힘은 미미했다. 두세 시간쯤 켜서 미리 예열을 하고 방에 들어가면 괜찮았지만, 따뜻함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옮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미칠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이어서 크게 유용하지는 않았다. 샤워를 하기 전에 화장실을 데워두거나 아쉬운 딴에 회전 모드로 사용하는 데에는 적당했다.

  온풍기가 있어도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추위는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더 추워진 것 같았다.
  더위는 타인을 증오하게 하지만, 추위는 나 자신을 증오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울 때에는 타인의 존재가 짜증스럽지만, 추울 때는 나라는 존재 자체가 짜증스러웠다. 내가 왜 존재해서 이런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지옥인데,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 하루하루 피폐했다.

 '선택'을 하기 전까지 우리는 추위와 싸웠다.
  싸움 끝에 우리가 깨달은 것은 추위는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달아나 숨거나 끝없이 견디거나. 추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처음부터 그게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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