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3화
- 수리부엉이는 호우호우 운다
Winter is coming
간밤에 호우 호우 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소리였다. 새소리 같기도 하고 다른 산짐승 소리 같기도 했다. 뭘까 뭘까 하는 동안에도 계속 호우 호우 들려와서 스마트폰에 손을 뻗었다. 몇 번의 검색 끝에 호우 호우 우는 새는 수리부엉이라는 걸 알았다.
날이 추워지면 울기 시작하고, 겨울밤 대나무 숲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는 수리부엉이.
텃밭 뒤편으로 제법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는데 거기서 우는 모양이었다.
고요한 새벽녘,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호우 호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부엉이 소리를 다 들어본다며 남편과 나직이 웃었다. 수리부엉이는 겨울을 알리는 전령사구나, 그렇게 속삭이면서.
수리부엉이가 울고 간 아침, 코끝이 제법 시렸다.
슬그머니, 발끝도 시렸다. 수납장 안에 고이 모셔둔 전기장판과 온열방석을 꺼낼 시간. 강아지용 담요와 겨울 집도 거실로 나왔다. 후추와 율무도 살짝 추웠는지 후추는 담요 위에 앉아 몸을 말았고, 율무는 집 안으로 쏙 들어가 손으로 코를 가렸다. 털이 있어도 추운 건 비슷한 모양이었다.
느지막이 양파도 심었다. 마을 주민 한 분이 더 늦으면 못 심는다고 알려주셔서 양파 모종을 시장에서 사 왔다. 양파는 모종을 한 개 두 개 단위로는 팔지 않고 한 판씩 팔았다. 모종 한 판에는 양파 싹이 100여 개. 가격은 만 원.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다 제대로 큰다는 보장은 없었다.
양파 모종을 이주시키기 전에 비닐 멀칭(농작물을 재배할 때 경지 토양의 표면을 덮어주는 일, 현대에는 주로 비닐을 사용한다.)을 했다. 이렇게 땅을 까만 비닐로 덮어주면 햇빛이 차단되어 잡초가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11월쯤 심어두면 내년 봄쯤 수확할 수 있는 양파는 오랜 기간 동안 땅 속에 있어 제때 잡초를 뽑아주기가 여간 쉽지 않단다. 잡초 뽑다가 허리가 휘지 않도록 우리도 서툴게나마 멀칭을 했다. 비닐을 덮는 작업이 끝나고 멀칭 한 비닐에 구멍을 내어 모종을 심었다. 100여 개의 모종을 줄 맞춰 심으며 내년에는 양파 부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양파를 심고 들어가려던 차에 텃밭과 마당의 경계에서 못 보던 콩깍지를 발견했다. 깍지를 까 보니 그 안에서 나온 건 팥. 심은 적도 없는데 이게 무슨 팥인고 하니,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혹시 귀신이라도 있을까 봐 뿌렸던 팥이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더니, 그 팥이 자라 또 팥을 뿌리고 있었다.
팥깍지를 이대로 두면 거기서 또 팥이 나와 땅에 심길 거고, 그럼 또 그 팥이 팥을 뿌리고, 또 그 팥이 팥을... 그런 생각을 하다 온통 팥으로 뒤덮인 마당을 상상했다. 한 번 뿌려놓으면 무한리필(?) 되어 잡귀를 계속 쫓아주는 팥의 영험함이 놀라웠다.
한낮에는 마당에 나가 햇볕을 쬐었다. 겨울이 가까워오면서 낮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도시와 달리 인공 불빛이 많지 않아 이곳은 여섯 시만 되어도 어두컴컴했다. 날도 추운 데다 농사를 짓는 계절도 아니니 길에서 마을 사람들을 마주치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온 마을이 적막한 새벽이면 이 세상에 나와 남편, 강아지 두 마리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낮이 짧아진 꼭 그만큼, 겨울이 바싹 다가와있었다. 긴 겨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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