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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45 고양이를 부탁해

by 구루퉁 2023. 2. 28.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45화
- 고양이를 부탁해

황간의 길고양이들(5) 고양이 구출작전


삼색이와 달리 경계가 심해 좀처럼 먼저 다가오지 않았던  턱시도. 그런 턱시도가 어느 날,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황간의 고양이들 중 가장 살가운 고양이는 삼색이었다. 처음에는 경계가 심했지만 어느 정도 친해지자 삼색이는 우리 다리에 몸을 비비며 살갑게 다가왔다. 밤에 마당에 나가면 냥냥,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도 삼색이었다. (반면 우리 동네의 또 다른 삼색이, 반반이는 이 구역의 실세로 모든 사람에게 하악질은 기본이고, 가끔 삼색이와 턱시도를 때리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집고양이었던 시절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삼색이는 우리에게 마음을 곧잘 내어주었다. 길고양이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기에 필요 이상으로 가까운 관계가 되어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삼색이는 늘 먼저 다가와 우리에게 관심과 애정을 표현해주었다.

  그에 비하면 함께 다니는 턱시도는 좀 더 겁이 많은 타입. 삼색이와 어느 정도 친해질 동안에도 턱시도는 늘 멀찍이서 언제든지 달아날 수 있는 자세로 우리 기색을 살폈다. 밥을 먹을 때도 삼색이가 먼저 밥을 먹으면 그제야 턱시도가 다가오는 식이었다.

  삼색이와 턱시도는 대부분 붙어 다녀서, 우리는 두 고양이에 관계에 대해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추측을 해보았다.

  추측 하나, 턱시도는 삼색이가 낳은 새끼다.

  추측 둘, 턱시도와 삼색이는 자매 사이다.

  추측 셋, 둘은 혈연관계는 아니고 그냥 단짝이다.

  추측 넷, 턱시도가 삼색이를 (그냥) 따라다닌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추측이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런 턱시도- 좀처럼 자기를 드러내지도,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지도 않는 턱시도가 하루는 아침부터 우리 집 담벼락에서 야옹야옹 울고 있었다. 어느 고양이가 우나 싶어 나가보니 턱시도가 우리를 빤히 보며, 도망도 가지 않고 야옹야옹하고 울었다.

  다가가자 턱시도는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은 자세를 하면서도 계속 그 자리에 서서 말을 걸어왔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의아했다. 마치 도와달라는 것처럼 턱시도가 계속 울어서 근처를 살펴보니 옆쪽 폐가에서 가느다랗게 삐약삐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끼 고양이 소리 같았다.

  폐가를 한 바퀴 돌아보며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았다. 예전에 우물이었던 자리를 막아둔 자리에서 울음소리가 또렷하게 새어 나왔다. 우물을 막아둔 시멘트 한 구석이 부서져 틈이 생겼는데, 그 틈으로 새끼 고양이가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바닥에 엎드려 틈새를 들여다보니 우물이 생각보다 꽤 깊었다. 틈이 너무 좁아 뜰채를 집어넣을 수도, 우물이 너무 깊어 우리가 들어가 고양이를 꺼내올 수도 없었다.

 

 

 

  일단 새끼 고양이의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물 입구에서 후레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어보니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 두 개가 보였다. 어렴풋이 새끼 고양이의 형체도 보였다. 섣불리 나섰다 새끼 고양이를 다치게 할까 봐  우리는 먼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련 기관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동물자유연대를 비롯해 길고양이 관련 사업을 하는 비영리단체 및 군청, 영동군 내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 혹시 고양이를 구조할 수 있는 곳이 충북 영동군 근처에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우물 안에 빠져 있는 고양이를 구출할만한 기관은 없었다.

  이대로 둔다고 해서 고양이들이 힘을 합쳐 새끼를 구해낼 리 만무했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새끼 고양이는 저 아래에서 굶어 죽어갈 것이 뻔했다.

  밤이 오고 낮이 되는 동안 삐약삐약, 울음소리가 잦아드는 것을 듣고 있을 자신은 나도 남편도 없었다. 무슨 시도라도 해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저 작은 고양이를 위해 뭐라도 해보자,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고양이를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우물 위를 덮어둔 시멘트를 들어내는 것뿐이었다.

  위험천만하지만, 창고 한 구석에 박혀있는 정(丁)으로 시멘트를 귀퉁이부터 조금씩 부숴서 들어내기로 했다. 정 끝을 돌로 쳐서 시멘트를 긁어내니 비로소 우물 바닥에 있는 고양이가 보였다. 본격적으로 시멘트를 부수기에 앞서 뜰채를 시멘트 아래에 바짝 댔다. 떨어지는 시멘트 조각을 바로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라도 하면 고양이가 시멘트 조각에 맞을 위험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터였다.

 

 

 

  시멘트를 반쯤 들어낸 뒤 뜰채를 장대에 연결해 우물 아래까지 닿도록 만들었다. 새끼 고양이를 잡으려 장대를  천천히 휘젓자 고양이는 우물 안을 뱅글뱅글 돌며 도망을 다녔다. 간신히 뜰채로 고양이를 잡아 천천히, 조심히 들어올리자 삐약삐약 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턱시도의 새끼로 보이는 이 고양이는 삼색 고양이도, 턱시도 고양이도 아닌 갈색 줄무늬 고양이었다. 우리가 아는 한 이 동네에 줄무늬 고양이는 이 녀석 뿐이었다.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외상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사람 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걸 보니 기운도 넘쳤다. 병원에 데려갈 필요는 없어보였다. 오히려 사람 손을 타서 어미에게 버림 받는 것이 이 녀석에게는 더 위험한 일일 것이었다.

 

 

 

  잔뜩 겁에 질린 고양이를 박스에 넣어 턱시도 근처에 놓아주었다. 턱시도는 주위를 살피다가 우리가 자리를 피하자 담 아래로 내려와 새끼 고양이를 데려갔다. 줄무늬 고양이는 엄마보다 앞장서서 발랄하게 총총 멀어져갔다.

  우리는 오늘 구한 줄무늬 고양이에게 구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구출아, 이제 어디 빠지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렴!

  고양이들이 모두 떠나고 마을은 다시 조용했다.

  마당에는 땀에 잔뜩 젖은 우리 두 사람만 서 있었다.

  폭풍 같은 반나절이 지나고 우리는 분명 내일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릴 서로를 직감했다.

 

 

 

  그 후로 우리는 종종 엄마 턱시도에게 목덜미를 물린 채 대롱대롱 매달려 어디론가 이동하는 구출이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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