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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47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by 구루퉁 2023. 3. 2.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47화
-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황간의 길고양이들(7) 이별의 계절


나무가 잎과 이별하는 계절, 우리에게도 이별이 찾아왔다.


  선선하던 바람이 제법 쌀쌀해져서 곧 있으면 눈을 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올겨울 첫눈인가, 세상이 다 새하얗게 빛나는.

  이곳의 겨울을 나는 알지 못한다. 눈이 오는 겨울은 잘 알지 못한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내 고향은 경남 쪽이라 눈이 자주 오지 않았으니까. 내가 자라는 스무 해 동안 나는 눈이 쌓일 만큼 온 광경을 손에 꼽을 만큼 봤다. 어쩌다 눈이 오는 내 고향에서는 눈이 조금이라도 쌓이면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고 택시는 영업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눈이 쌓이는 것이 이벤트인 곳에서 나는 자랐다.

  지금은 나도 눈이 퍽 좋지는 않다. 눈 내린 땅은 축축하고 녹을 땐 지저분한 데다 제때 치우지 않으면 빙판으로 얼기까지 해서 성가시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튼 올해도 눈은 분명히 내릴 테니, 나는 최대한 집안에서 쌓인 눈을 감상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마당에서는 율무가 왕왕 짖었다. 택배가 왔나? 기웃거려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추우니 아침에 현관문을 열어달라는 강아지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가 조금 뒤 열어주고 있었다. 이제쯤 열어줘야겠다 싶어 문을 열었는데 강아지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율무는 계속 짖었다. 간간이 후추가 짖는 소리도 들려왔다. 뭔가 상황이 평소와 달라서 강아지들이 있는 쪽으로 가보았다. 강아지들은 텃밭 옆쪽으로 둘러쳐진 울타리 근처에서 짖고 있었다. 가끔 이쪽으로 고양이나 산짐승 등이 지나가기는 했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율무를 진정시켜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내 발목 옆 울타리 뒤쪽으로 누워있는 고양이를 봤다.

  자세히 보니 구출이었다. 내가 다가가도 구출이는 달아나지 않았다. 구출이의 몸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이따금씩 하얀 거품을 토해냈다. 구출이의 몸은 울타리와 우리 집 사이를 막아둔 철망 구멍에 끼여있었다. 깜짝 놀라 구출이를 꺼내 양지바른 곳에 뉘어주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인터넷으로 증상을 검색하는 동안 구출이는 이내 숨을 거뒀다.

  눈도 감지 못한 죽음이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많은 분들이 오늘이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만큼 이별은,

  갑작스러웠다.

  모든 죽음이 그러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픔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뒤늦게 텃밭 한편에서 눈을 감은 카삼이도 보았다. 몸은 이미 굳어 차가웠다. 카삼이도 데려와 살펴보니 구출이와 똑같은 증상. 하얀 거품을 토한 흔적이 있었다.

  어젯밤에도 두 고양이는 우리 집 마당에서 밥을 먹고 마당을 뛰놀았다. 건강상의 문제는 없어 보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눈을 감다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

  우리 집 텃밭 쪽에서 무언가를 잘못 주워 먹었나 싶어 여기저기 살펴봤지만 의심 가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몸에는 상처나 핏자국도 없었다. 여러 가지 정황과 인터넷의 지식을 종합해 우리는 구출이가 어딘가에서 농약이나 쥐약을 먹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게 더 정확했다.

 

 

 

  구출이가 태어난 폐가 쪽 뜰을 바라보았다. 남은 고양이들은 그 뜰에서 여전히 햇볕을 쬐고 있었다. 구출이가 자주 앉아있던 자리에서 다른 고양이가 잠을 잔다.

  너희들과는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해본다. 고양이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서로의 하루하루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차라리 아주 새끼 때 고양이들을 구출해 좋은 곳으로 입양 보냈더라면, 부질없는 후회를 했다.

  태어나고 죽는 것, 이 별의 생명들이 무수히 반복해온 일. 예외는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앞에 두고서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른다.

  구출이와 카삼이를 대추나무 아래 묻어주었다. 흙으로 덮고 꺾어온 흰 들꽃을 놓아주었다.
  잘 가,

  그리고
  삶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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