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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48 꿩 대신 닭? 닭 대신 메추리!

by 구루퉁 2023. 3. 3.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48화
- 꿩 대신 닭? 닭 대신 메추리

메추리 프로젝트(1) 자급자족의 꿈을 향해


우리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삶, 우리는 그걸 꿈꾸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강한 책임감에 제대로 묶여본 적도 없으면서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이 지독히도 싫었다. 새로움이 익숙함으로 변하고 이내 그것을 잃게 될까 전전긍긍하는 게 싫어서 부러 안주하지 않았다.     

  이 일이 아니어도 먹고살 수 있어.
  여기가 아니라도 행복할 수 있어.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나는 내가 될 수 있었고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시골로 갑자기 내려온 것도 다르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어디서나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꾸릴 수 있다는 자신감, 나는 그게 필요했다.     

  남편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그런 우리가 ‘자급자족(自給自足)’하는 삶을 동경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삶에 필요한 노동을 자발적으로 하면서 누구에게도 우리의 시간을 팔지 않는 삶.

  평생직장, 정년퇴직 같은 건 기대할 수도, 기대하지도 않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덜 가지고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레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서툴게나마 텃밭을 가꾸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텃밭농사의 다음 수순으로 메추리를 기르게 된 것은 그리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저녁을 먹으려는데 마침 달걀이 딱 떨어져 마트에 간 날 우리는 이렇게 자주 먹는 달걀을 사지 않고 집에서 구할 수 있다면 어떨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생각했고

  나보다 좀 더 추진력 있는 남편이 닭을 키워볼까, 운을 뗐고

  얼마 전의 소동으로 닭이라고 하면 지네부터 떠오르는 나는 단김에 아니, 대답했고

  어색한 침묵이 몇 초간 흐르다 아무래도 마음이 약해진 내가 닭은 좀 그렇고 메추리는 어때, 물은 것이 시작이라면 시작.   

  그 후
  그런데 메추리를 어디서 구하지? 인터넷 같은 데서 분양하지 않을까? 너무 멀어서 데리러 가기가 어려울 텐데. 유정란을 부화시키면 되지 않을까? 유정란? 어, 잠시만 이마트에 메추리 유정란 판대. 그래?
  와 같은 일련의 대화를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메추리알을 사러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비록 상추와 토마토, 고추, 청경채 정도가 고작인 텃밭이지만) 채소에 이어 동물성 단백질인 메추리알까지 얻을 수 있다면 우리의 시골생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거라는 부푼 꿈을 안고 우리는 메추리 유정란 한 판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꿩 대신 닭이 아니라 닭 대신 메추리인 셈이었다.     

  메추리알을 부화시키는 방법은 간단했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니 대부분의 조류들이 부화하는 37.5도, 습도 50% 정도로 환경을 조성하고 20여 일간 서너 시간에 한 번씩 알을 굴려주다가 마지막 삼일 정도는 습도를 60% 이상으로 올려주어 메추리가 알을 쉽게 깰 수 있도록 해주면 어렵지 않게 메추리가 태어난다고 했다.     

  생명의 탄생과 같은 어마어마한(?) 경험을 하는 것 치고는 의외로 싱거웠지만
  단,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화기가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메추리알 부화기를 사면 온/습도를 버튼을 조작해 간단히 조절할 수 있고, 일정한 주기로 메추리알을 놓은 자리 아래의 판이 자동으로 돌아가면서 알을 굴려주기 때문에 기계를 켜둔 뒤 수시로 확인해주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그 부화기가 15만 원.
  암컷이 태어날지 수컷이 태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메추리알을 얻자고 지출하기에는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고민 끝에 남편은 메추리알이 부화하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에 따라 집에 있는 물건들을 이용해 부화기를 직접 만들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남편의 설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버리려고 내놓은 스티로폼 박스에 강아지용 배변패드를 깔고 그 위에 메추리알 40여 개를 가지런히 놓은 뒤 강아지용 드라이룸에 넣었다. 남편 책상 위에 있는 전구 조명을 가져와 스티로폼 박스 위에 걸어 온도를 맞추고는 컵에 물을 담아와 습도를 맞춰주었다.

 

 

 

  온/습도를 체크할 수 있는 작은 스탠드형 장치를 드라이룸 안에 함께 넣어 수시로 온/습도를 확인다. 서너 시간마다 메추리알을 굴려주는 일만은 자동으로 할 수가 없어 시간을 체크해두었다가 남편이 수시로 굴려주기로 했다.

  그렇게 가내수공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원시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위대한 과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전기와 물을 공급하고 알을 굴리는 20여 일간의 노동으로 태어난 메추리가 죄다 수컷이라면, 그 또한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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