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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44 삼색이네 4남매

by 구루퉁 2023. 2. 27.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44화
- 삼색이네 4남매

황간의 길고양이들(4) 삼색이네 4남매를 소개합니다


 


작은 식빵 모양으로 앉아있는 오묘한 털색의 '흐삼이'. 발랄한 녀석들의 등장으로 우리의 시골살이는 좀 더 행복해졌다.


  우리가 밤 산책을 엿본 것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고양이들은 이제 더 이상 거리낄 게 없다는 듯이 낮이고 밤이고 모습을 드러냈다. 삼색이가 이번에 자리 잡은 곳은 아무래도 우리 담벼락 옆으로 바짝 붙어있는 빨간 지붕 폐가의 지붕인 것 같았다.

 

 

  볕이 좋은 낮에 옥상에 올라가 담벼락 너머를 쳐다보면 삼색이는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며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못 본 사이 삼색이의 몸집이 조금 작아진 것 같기도 했다.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육아는 고된 것이 틀림없었다.

  새끼들에게 붙들려 시달리다가도 해가 저물면 고양이들은 우리 집 마당으로 와서 밥을 먹었다. 새끼 고양이들이 담을 타기 전까지 우리 집은 어미 고양이들이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삼색이네 새끼 고양이들이 담 위로 올라올 수 있게 되면서 우리 집 마당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동네 고양이들이 쉬어가는 아지트가 되었다.

 

 

 

  어느새 고양이들은 개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사각지대까지 파악해 그곳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새끼들도 어미를 따라 담벼락 위에 자리를 잡았다. 위에서 보면 띄엄띄엄 앉아있는 새끼 고양이들을 볼 수 있었다.

  며칠간의 관찰을 통해 삼색이의 새끼가 총 네 마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참 재미있게도 네 마리 새끼 중 두 마리는 엄마와 같은 삼색 고양이, 나머지 두 마리는 흰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는 턱시도 고양이였다. 한 배에서 난 새끼 고양이라고 해도 모두 같은 색깔이 아니라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동네 고양이들 족보가 어떻게 되기에 삼색 고양이와 턱시도 고양이만 태어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며칠간의 잠복(?) 관찰을 통해 고양이들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이름을 하나씩 붙여주기로 했다.

   삼색이네 4남매를 한 마리씩 만나보자.

 

 

  가장 먼저 소개할 고양이는 '박스티'.

  검은색 무늬가 머리에서 발 끝까지 쭉 이어진 듯 보이지만, 자세히 살피면 허리쯤에서 무늬가 한 번 끊어져 마치 박스티를 입은 것 같아 붙인 이름이다.

   4남매 중 가장 활발한 이 녀석은 호기심이 왕성하고 모험심도 강하다. 네 마리 고양이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 박스티는 그야말로 '퍼스트 펭귄*'이라 할만했다. 박스티가 새로운 곳으로 가면 다른 새끼들이 그 뒤를 따랐다. 우리 집 마당으로 제일 처음 훌쩍, 넘어온 것도 바로 박스티였다.

*퍼스트 펭귄 : 펭귄의 습성에서 비롯된 단어. 무리지어 생활하는 펭귄들은 먹잇감을 구하러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지만, 바다표범 같은 바다의 포식자들이 두려워 머뭇거리는데 이 때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도 뒤따라 뛰어들도록 이끄는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고 한다.

이에 빗대어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용기를 내 먼저 도전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도 참여의 동기를 유발하는 선발자를 가리켜 퍼스트 펭귄이라고 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3437706&cid=58393&categoryId=58393)

 

 

 

  두 번째 고양이는 '콧수염'.

  코 옆에 턱수염 같은 모양으로 검은 털이 자라 붙인 이름이다. 두 번째로 활발한 이 녀석은 박스티의 바로 뒤를 이어 모습을 드러낸 고양이었다.

  콧수염만 멋들어진 줄 알았던 이 녀석은 의외로 사냥의 명수다. 늦은 여름밤, 창고에서 발견한 낚싯대 끝에 털실을 매달아 옥상에서 이리저리 휘두르며 '고양이 낚시'를 했을 때 날카로운 손톱으로 털실을 낚아채는 건 항상 콧수염이었다. 사냥에 있어서는 콧수염이 박스티보다 한 수 위인 것이 분명했다.

 

 

 

  세 번째 고양이는 '흐삼이'.

  삼색 고양이임이 분명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털색이 흐릿해서 붙여준 이름이다. 자기 이름이 흐릿한 삼색이의 줄임말이라는 사실을 알면 흐삼이는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오묘한 털색의 흐삼이를 가장 예뻐했다.

  박스티와 머스탱이 행동을 개시하면 그 뒤를 따르는 게 흐삼이었다. 경계심이 많지만 호기심도 그만큼 많은, 흐삼이는 그런 고양이었다.

 

 

 

  마지막 고양이는 '미삼이'.

  90년대 청순미인의 전형처럼 단정하게 5:5 가르마를 탄 것 같은 검은 무늬가 어딘지 모르게 도도해서 '미모의 삼색이'-줄여서 미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미삼이는 넷 중에 가장 경계심이 많아서 세 마리 새끼들이 모두 행동에 나서도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녀석이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세 마리를 지켜보고 신중하게 행동에 나서는 고양이, 미삼이는 우리 집 마당으로 가장 나중에 넘어왔다.

  4남매의 정확한 성별은 알 수 없었지만, 통계적으로 대부분의 삼색 고양이는 암컷이라고 하니 적어도 흐삼이와 미삼이는 암컷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다. 행동이 재빠르고 적극적인 박스티와 머스탱은 수컷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적극성이나 모험심으로 성별을 가늠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기준일테니 단정할 수는 없었다.

 

 

  이 작은 녀석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고양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작고 연약한 생명들이 어엿한 고양이로 자라는 것은 무수히 반복되어 온 이 별의 일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마냥 새롭고 신기한 일이었다.

  담벼락에도 오르지 못해서 엄마에게 목덜미를 물려 대롱대롱 실려가던 새끼들이 어느새 능숙하게 담을 타고, 늘 엄마가 핥아주었던 털을 열심히 스스로 다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흘러가는 시간이 속절없이 빠르게 느껴졌다.

 

 

 

 

  어설프고 서투르고 어색하지만, 조금씩 분명하게 자라나는 새끼 고양이들처럼, 우리도 아직 모든 게 다 어렵고 복잡하지만 조금씩 우리에게 맞는 삶의 모양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믿고 싶었다.

  고양이 4남매도 우리도 여기서 잘 지낼 수 있었으면-

  환영회라도 열어주어야 할까 싶었지만

  어쩐지 고양이라면 인간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인사 같은 건 가볍게 무시한 채 의연하게 살아갈 것 같아서

  앞으로도 우리는 고양이들을 멀찍이서 지켜보며 조용히 응원하는 점잖은 인간이자 이웃, 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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