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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41 몰래온 손님

by 구루퉁 2023. 2. 23.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41화
- 몰래온 손님

황간의 길고양이들(1) 인연의 시작


우리 집을 몰래 오가는 손님들의 기척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후추와 율무엿다. 두 마리 강아지는 틈날 때마다 마당과 옥상을 오가며 분주히 집을 지켰다.


  따스하던 햇살이 뜨겁게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우리 집에 새로운 손님이 왔다.    

  이 손님은 노크도 기척도 없이 수시로 담을 넘어 다니면서 후추와 율무의 영역을 넘봤다. 너무나 감쪽같이 드나드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누군가가 왔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몰래 온 손님의 방문을 먼저 알아차린 것은 강아지들이었다. 현관문을 열어두고 후추와 율무가 자유롭게 마당과 집을 오가도록 해두었더니 언제부터인가 온순하던 강아지들이 최선을 다해 짖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율무가 온몸을 들썩이며 맹렬하게 짖어댔는데, 그 소리에 놀라 달려가 보면 마당은 하냥 적막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나서부터는 강아지들이 짖어도 날아가는 새겠거니, 기어가는 벌레겠거니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우리 집을 오가던 손님이 처음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내 친구가 놀러와 마당에서 돼지 목살과 소시지를 굽고 있던 날이었다.

  남편이 불을 지핀 철판에 고기를 올려 능숙하게 굽는 동안 나와 친구는 고기가 익기만을 기다리며 밭에서 딴 상추를 손 위에 얹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기 냄새에 홀려 그 누구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네 개의 눈동자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남편이 먹기 좋은 크기로 고기를 잘라주기가 무섭게 마늘, 쌈장과 함께 고기를 얹은 상추쌈 하나를 크게 싸서 남편 입에 넣어주던 순간, 담장 위 몰래 온 손님들과 내 눈이 딱 마주쳤다. 좁은 폭의 담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우리를 바라보던 손님의 정체는 길고양이 두 마리였다.     

  한 마리는 하얀색 털에 노란색과 갈색 무늬 점이 박힌 삼색이, 또 한 마리는 등은 까맣고 배는 하얀 턱시도. 냄새를 맡고 온 듯 고양이 두 마리는 한 줄로 앉아 고기 먹는 우리를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의 눈빛을 느끼고 흠칫, 자세를 바꾸기는 했지만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배가 고픈가 싶어 소시지 한 조각을 담 위에 놓아주었더니 두 마리 고양이는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가 이내 돌아와 소시지를 전투적으로 씹었다. 며칠 굶은 듯 눈 깜짝할 사이에 소시지를 먹어치우면서도 고양이들은 내내 경계심을 놓지 않았다.     

 

 

  그 후로도 고양이들은 홀연히 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동네에서 종종 눈에 띄기도 했지만 사람도 고양이도 그저 멀찍이서 지켜볼 뿐이었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빠르게 사라졌다.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는 그들은 길 위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이었다.    

  동네에는 생각보다 고양이가 많지 않은지 삼색이와 턱시도 외의 다른 고양이는 잘 보지 못했다. 아니면 숨을 곳이 많아서 사람을 아주 잘 피해 다니는 걸까?

   길을 걷다 보면 고양이 서너 마리를 마주쳤던 서울과 달리 이곳에서는 고양이를 마주친 일이 그리 많지 않아서 우리는 집에 종종 들르는 고양이 두 마리를 삼색이와 턱시도라는 일반적인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삼색 고양이도 턱시도 고양이가 우리가 아는 한 모두 한 마리 씩이니 굳이 다른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었다.     

  고양이들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으면 우리를 빤히 바라보던 의심 어린 눈동자가 종종 떠올랐다. 그렇지만 여기는 시골이니까 고양이가 사냥할만한 동물들이 제법 있겠지, 막연히 생각했다.     

  시골에 고양이가 사냥할만한 동물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고양이의 사냥 성공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아 오히려 도시보다 시골이 고양이들에게는 더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는 고양이도 음식을 구하기 쉽지만 시골에서는 그렇지 않은 까닭에 고양이들의 개체 수는 시골이 현저히 적었다. 그러니 서울에 살 때보다 길에서 고양이를 마주치는 일이 더 드물었던 것이다.     

  시골 고양이들의 척박한 현실에 대해 알고 난 후 허겁지겁 소시지를 먹어치우던 삼색이와 턱시도가 자주 떠올랐다.

  그 무렵 가까운 대형마트에 갔다가 12kg 대형 고양이 사료를 2만 7천5백 원에 파는 것을 보고 덜컥 차에 실었다. 명백한 궁여지책에 미봉책이지만, 그냥 하루 한 끼 깨끗한 물과 짜지 않은 사료라도 배불리 먹이고 싶었다.      

 

 

 

  그날 저녁 잘 쓰지 않는 그릇 한 개에 정수기 물을 담고, 또 한 개에 사료를 담아 담벼락 앞 책상 위에 놓아주었더니 마당에 기척이 없는 틈을 타 삼색이와 턱시도가 훌쩍 담 위로 뛰어올랐다. 집 안에 있으면서도 고양이가 온 것을 알아챈 율무가 식탁 위로 올라와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삼색이와 턱시도는 두 마리가 늘 함께 다니는지 한 마리씩 차례로 밥을 먹었다. 한 마리가 밥을 먹는 동안 다른 한 마리가 주변을 경계하는 것 같았다. 그릇을 바닥까지 싹싹 비운 뒤 두 마리는 다시 홀연히 사라졌다. 현관문을 열자 강아지들이 달려가 고양이가 떠난 마당 곳곳을 누비며 냄새를 맡고 영역표시를 했다.     

  매일 저녁 같은 시간에 마을 어른들의 눈을 피해 그릇 두 개를 가지런히 책상 위에 놓아두면서, 그렇게 삼색이와 턱시도, 두 마리 고양이와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나중에는 삼색 고양이가 한 마리 더 늘어나 원래 오던 삼색 고양이를 삼색이, 두 번째로 합류한 귀 한쪽은 노랑, 다른 한쪽은 갈색인 삼색 고양이를 반반 삼색이, 줄여서 '반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보다 먼저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오던 이 세 마리 고양이들과의 인연이 생각보다 오래, 그리고 질기게 이어질 것이라는 걸 그 당시의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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