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42 이웃집 삼색이

by 구루퉁 2023. 2. 24.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42화
- 이웃집 삼색이

 황간의 길고양이들(2) 남의 집 살이의 설움을 딛고


옥상에서 동네를 바라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5월의 평화가 되도록이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만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불리 밥을 먹고 돌아가는 고양이들을 지켜보는 일은 우리 일상에 새로운 활력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행복은 늘 불행과 함께 온다는 말처럼 매일같이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겼다. 고양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통에 강아지들이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짖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술래잡기라도 하는지 고양이들이 몸을 숨긴 채 마당으로 내려오면 낌새를 알아챈 강아지들이 힘껏 달려가 온 동네가 떠나가라 짖는 일이 반복됐다. 율무가 달려가면 고양이들은 훌쩍 담 위로 올라가 유유히 사라졌고 후추와 율무는 분한 듯 억울한 듯 한참을 짖었다.      

  개 짖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 시골이었지만 우리 집 개가 시끄럽게 짖으니 정신이 사나워서 당장 내가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일을 하다가 율무가 짖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밥을 꾸준히 해질 무렵에 주었더니 다행스럽게도 삼색이와 턱시도가 저녁에만 집으로 찾아오면서 낮은 강아지의 시간, 밤은 고양이의 시간이 되었다.

  아침에 고양이와 강아지가 마주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적도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고양이들은 밤 동안 마당에 머무르다 아침이 되면 홀연히 사라졌다. 강아지와 고양이의 암묵적인 합의가 극적으로 이뤄지면서 우리 마당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푸르름이 절정을 향해 가는 5월의 끝자락, 따사롭던 햇살이 서서히 뜨거워지자 깨어 있는 동안 집 안에 있는 시간보다 집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우리가 주로 있는 곳은 지붕 아래 옥상테라스. 안 쓰는 플라스틱 박스와 주워온 나무판자로 남편이 뚝딱뚝딱 만들어준 평상 위에 앉아 대문 밖을 내려다보면 우리 집으로 뻗어있는 골목이 한눈에 보였다.     

  푸르고 나지막한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놓여서, 내내 거기 머물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밥을 먹고 노래를 들었다. 우리가 옥상에 있으면 강아지들도 우리 옆에 앉아 몸단장을 하거나 먼 곳을 응시했다. 서로가 무얼 보고 있는지 끝끝내 알 수 없어도 두 사람과 두 마리가 저마다 평안했다.     

 

 

 

  그러나 강아지와 고양이의 평화조약이 잘 지켜져 더할 나위 없이 조용했던 날들은 얼마 가지 못했다. 골목 초입 할아버지 댁 초록지붕 틈 사이에 삼색이가 갑작스레 자리를 잡았는데, 옥상에 보초를 서다가 지붕을 들락거리는 삼색이를 본 율무가 맹렬하게 짖어대면서 느닷없이 2차전이 시작된 것이다.

  거기에 고양이를 싫어하시는 할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아침마다 더해지면서 우리의 평화는 가루가 되었다.     

  아침이 되면 골목 초입 집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옥상으로 올라가 빨래를 너시고, 점심시간이 되면 옆집 할머니께서 바구니를 들고 밭을 오가는 고요했던 풍경은 이제 없었다.

  아침이 되면 지붕 틈으로 나오는 삼색이를 보고 호통을 치시는 할아버지와 그 호통 소리를 듣고 옥상으로 달려가 왕왕 짖어대는 후추와 율무, 그리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 풍경을 바라보며 귀를 틀어막고 괴로워하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삼색이는 왜 갑자기 저곳에 둥지를 틀었을까.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지붕 틈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삼색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지붕에서 새끼 고양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고양이들이 주로 새끼를 낳는 5월 되면 어미 고양이들은 새끼를 위해 새로운 영역을 찾기도 하고 옮겨가기도 는데 지금이 딱 그 시기인 모양이었다.

  멀찍이서 작은 솜뭉치 같은 새끼들을 지켜보았다. 새끼들은 아직 너무 어려서 지붕 아래로 내려가지는 못하고 지붕 위 공간을 아장아장 걷다가 총총 뜀박질을 했다. 이 계절을 꼭 닮은 싱그러운 몸짓이었다.

  고양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찰나의 시간을 영원처럼 느낀 것도 잠시, 지붕 위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에 화가 난 할아버지가 장대를 들고 나오셨다.

  기다란 장대가 지붕을 툭툭 때리자 깜짝 놀란 새끼 고양이들은 지붕 틈새로 쏙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분이 채 풀리지 않은 할아버지는 에잇, 에잇 호통을 치셨고 그 소리에 또다시 온 동네 개들이 짖었다.

    아마도 이 난리는 고양이들이 이사를 가지 않는 한 꾸준히 반복될 것 같았다.

   남의 집 살이의 설움은 사람이나 고양이나 매한가지구나 싶었다.

  눈칫밥을 먹으며 지붕 위에서 지내던 삼색이네 식구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삼색이가 새끼들을 모두 데리고 떠난 것 같았다. 어디로 갔을까, 걱정하는 내게 삼색이 가족의 행방을 알려준 것은 이번에도 후추와 율무였다.

  언제가부터 후추와 율무가 우리 집 뒤쪽 폐가를 보고 짖는 일이 잦아서 쪼그리고 앉아 후추와 율무의 눈높이로 풀이 무성하게 자란 뒷집 뜰을 바라보았더니 수풀 사이로 신나게 뛰어노는 새끼 고양이들이 보였다.

 

 

 

새끼 고양이가 숨어있어요:) 한 번 찾아보세요

 

  남의 집 살이의 설움을 딛고 대견하게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삼색이는 밤마다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와 육아의 고충을 사료 한 그릇으로 달랬다. 새끼를 낳고 기르는 어미의 고단함을 발치에서 보며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사료를 듬뿍 부어주는 일, 그뿐이었다.

  삼색이 가족의 새 집이 우리 집 옥상에서 더 잘 보이는 위치에 있어서 나와 남편은 틈만 나면 옥상으로 올라가 새끼 고양이들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새끼는 삼색 고양이 두 마리에 턱시도 고양이 두 마리였다. 늘 함께 다니는 삼색이와 턱시도 조합이 세대를 넘어 반복되었다. 이쯤 되니 혹시 삼색이와 턱시도도 자매지간, 혹은 모녀지간이 아닐까 싶었다.

  새끼 고양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 어느새 담벼락을 기어올라 삼색이의 달콤한 휴식시간을 방해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담벼락을 뛰어내릴 만큼 자라지는 않아서 새끼 고양이들은 그저 멀리서 어미를 보고 냥냥 울었고, 그럴 때마다 삼색이는 뒤를 흘끗 돌아보았다가 다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데 열중했다.

  그래그래, 아무리 새끼가 소중해도 엄마가 행복해야 지치지 않고 육아를 할 수 있는 법. 굳세어라, 삼색이!

  삼색이와 전보다 조금 더 가까워진 우리는 옥상테라스에서 싱글맘 삼색이의 삶을 최선을 다해 응원했다.

  삼색이가 왜 여기로 이사를 왔는지, 나는 아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삼색이는 길고양이에서 우리와 담을 마주한 이웃집 고양이가 되었다.

 

 

반응형

'시골살이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44 삼색이네 4남매  (2) 2023.02.27
43 자두의 시간  (0) 2023.02.25
41 몰래온 손님  (1) 2023.02.23
40 결국 모두 시간이 해결할 문제  (0) 2023.02.22
39 겨울의 끝자락  (0) 2023.02.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