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40화
- 결국 모두 시간이 해결할 문제
다시, 봄
겨우내 얼었다 풀린 땅을 뚫고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미는 건 잡초.
추위가 물러가기 무섭게 자라는 잡초를 뽑고 이랑을 뒤엎으며 한바탕 흙을 섞었다. 뿌린 뒤 바로 작물을 심어도 되는 완숙퇴비(완숙퇴비 말고는 반숙퇴비가 있는데, 반숙퇴비는 숙성이 덜 된 상태이기 때문에 뿌린 뒤 작물을 바로 심을 수 없다.)를 뿌려주었다.
텃밭을 뒤덮은 흰 눈이 녹자 비로소 작년 가을에 심어둔 양파가 빼꼼히 싹을 올린 것이 보였다. 양파는 10~11월쯤 모종을 심은 뒤 해를 넘겨 다음 해 4~5월쯤 수확하는, 생육기간이 비교적 긴 작물이다. 양파를 언제 심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가 장에서 모종을 보고 부랴부랴 심어서 제대로 뿌리를 내린 것이 많지는 않아보였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싹을 곧게 뻗어올린 양파줄기들이 대견했다. 양파는 요리에 쓰임새가 많으니 벌써부터 수확할 날이 기다려졌다.
되돌아보면 내가 시골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분명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불안하고, 그래서 늘 조바심을 달고 사는 인간인데 안절부절 못 해봐야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건 시간이었다.
시간을 두고 길러야 하는 양파를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해서 뽑아 쓸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은 미리 두려워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양파가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듯 때로는 어떻게 하려고 들지말고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방법이라는 것을 이곳의 자연이 가르쳐주었다.
봄의 또다른 재미는 겨우내 만들어 놓은 간식들을 먹는 데 있었다. 떫은 맛을 없애기 위해 100일 이상 숙성시킨 아로니아청을 물에 타 마시거나 곶감을 야금야금 뜯어먹으면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었다. 나무엔 가지가지마다 봄을 알리는 축포가 터지고, 드디어 거실에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기온이 되었다.(겨울 동안은 너무 춥고 발이 시려 거실에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잘 말려둔 곶감은 단맛이 한껏 들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곶감을 먹던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은 곶감의 달달함이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는 점. 딱딱하고 떫은 맛이 나는 감이 말랑말랑하고 달달한 곶감이 되려면 얼었다 녹았다 그 혹독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퇴비를 주고 처음으로 우리가 심은 작물은 감자. 감자를 놔두면 싹이 자라는데 그 싹을 심으면 거기서 또 감자가 자란다. 한 감자에 싹이 여러 개 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감자를 조각내 심는다. 이론적으로 감자는 잘랐을 때 한 조각의 크기가 30g을 넘는 것이 가장 좋고, 뿌리에 감자가 맺히기 때문에 이랑을 두둑하게 쌓은 뒤 잘린 면이 아래로 가게, 그러니까 싹이 위를 보도록 심으면 된다.
감자 하나를 네 다섯 조각으로 나눠 심다보니 몇개 안 되는 감자로 금세 한 고랑이 찼다. 감자에는 무당벌레가 잘 꼬인다고 하니 다가오는 봄은 무당벌레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사둔 브로콜리 씨앗도 접시에 발아시켜두고 흰 민들레와 토마토 씨앗도 미리 사 두었다. 작년에 방울토마토가 풍작이었으니 올해는 큰 토마토로 본격 도전. 이름부터 '파워 레드 토마토'. 아주 잘 자랄 것 같은 씨앗이었다.
겨우내 내 방 한 구석에서 향긋한 냄새를 전해준 모과는 슬라이스해 모과청으로. 단단한 모과를 어설프게 써는 내가 아무래도 불안했는지 남편이 슥슥 모과를 얇게 썰어주었다.
모과에는 물기가 별로 없어서 과연 청이 될까, 싶어도 천연당에 묻어두면 수분이 베어나온다. 그 맛 또한 즙이 많은 여느 과일 못지 않다.
모과가 알맞게 숙성되었을 즈음엔 완연한 봄일 것이다.
이곳에서 맞는 두 번째 봄, 이야기는
다시,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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