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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의 기록/뜨리의 독서모임

알베르 카뮈 <시시포스 신화> 독서모임 질문지 첨부

by 랄라맘맘 2023. 7. 30.

도서 : <시시포스 신화>, 알베르 카뮈, 연암서가, 2014

0-1. 별 다섯 개 만점 기준으로 이 책에 별점을 매긴다면? (점수와 더불어 책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과 감상을 말씀해주세요.)

 

0-2. 철학은 어려운 것일까요?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눠보아요.

 

1.

이 책을 쓴 알베르 카뮈는 책 서두에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바로 자살”이라고 말하며 “삶이 고생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p.17) 임을 밝힙니다. 저자는 “산다는 것, 이는 곧 부조리를 살려 놓는 일”이고 부조리를 살려 놓는 것은 “곧 부조리를 주시하는 일”(p.96)이기 때문에 “자살은 부조리를 그 똑같은 죽음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나름대로는 부조리를 해결하고 있”지만 “부조리는 죽음에 대한 의식인 동시에 거부라는 점에서 자살을 벗어나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는 “자살은 비약과 마찬가지로 극한에서의 수용”이며 “부조리가 유지되려면 결코 해소되어서는 안” 되기에 ‘반항’을 통해 “삶에 가치를 부여”(p.97)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카뮈의 이러한 주장에 공감하시나요?

한 실존 전체에 걸쳐 있는 이런 반항은 삶에 그 위대함을 회복시켜 놓는다. 눈가리개로 두 눈을 가리지 않는 이에게, 인간의 지성이 제 한계치를 넘어서는 현실과 드잡이를 벌이는 것보다 더 멋들어진 광경은 없으리라. (중략) 의식과 반항, 이러한 태도들은 포기의 정 반대다. (p.97~98)

 

 

 

2.

카뮈는 “모든 위대한 행동들과 모든 위대한 사상들은 극히 하찮은 발단에서 시작된다”(p.31)고 말하며 부조리의 첫 징후에 대해 언급합니다. 카뮈에 따르면 “기상, 전차, 사무실 혹은 공장에서의 네 시간, 식사, 전차, 네 시간의 노동, 식사, 수면,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화수목금토”를 보내다 “어느 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게 됩니다. 이를 카뮈는 “무대 장치가 무너지는 경우”에 비유하며 “놀라움이 옅게 배인 권태” 속에서 피어오르는 “역겨운 구석”(p.32)을 제시합니다.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3.

<시시포스 신화>에서 ‘부조리’라는 개념은 매우 자주 등장합니다. 카뮈는 “세계의 이러한 두께와 이러한 낯섦”이라는 표현을 통해 부조리를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세계의 원초적 적의가 수천 년을 거슬러 우리 앞에 들이닥”쳐 우리가 “이런 세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되는”(p.34) 상황이 부조리입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 자체의 비인간성 앞에서 느껴지는 저 불편한 감정, 우리 존재 자체의 모습 앞에서 느끼게 되는 저 헤아릴 수 없는 추락”, “어느 순간 거울 속에 불쑥 나타나 우리 자신과 마주치는 낯선 자”(p.35) 등도 모두 부조리입니다.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욕망하는 정신과 실망을 안겨 주는 세계 사이의 절연, 통일이라는 나의 향수, 도처에 흩어져 버린 저 우주, 그리고 그것들을 한데 묶어 놓는 모순이 바로 부조리다. (p.88)

 

 

 

4.

카뮈는 인간이 “부조리와 마주치는 순간, 저 우월한 자유, 어떤 진리를 성립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토대인 ‘존재’의 자유가 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확연하게 깨닫”게 되며 “죽음이 유일한 현실로 존재한다”(p.101)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카뮈에 따르면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인간은 “바닥 없는 저 확실성 속으로 깊이 침잠”(p.104)하고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충분히 낯설어짐으로써 삶을 확장”하며 “감옥문이 열리고 그 앞으로 끌려 나온 사형수가 맛보는 저 기막힌 자유”와 “삶의 순수한 불꽃 이외의 모든 것 앞에서 내보이는 저 놀라운 무관심”의 원리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오직 와해와 허무뿐인 그런 세계를 언뜻 목격”한 부조리의 인간은 “이런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일을 받아들이기로”(p.105) 결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카뮈의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보셨나요?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고통스러운 의식에서 출발했던 부조리에 대한 성찰은 그 노정의 끝에 이르면 인간적 반항의 열정적인 불꽃 속으로 귀착된다. 이상의 내용이 내가 부조리에서 나의 반항, 나의 자유, 나의 열정이라는 세 가지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오직 의식의 작용을 통해 죽음으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았기에, 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 (p.111)

 

 

 

5.

카뮈는 “기한이 매겨진 자유, 미래 없는 반항, 그리고 결국 소멸하게 될 의식을 확신”하기에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모험을 추구”(p.116)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따라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완전한 소진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 혹은 내 의식에 그들 나름대로 스스로를 소진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만을 택”(p.119~120)하겠다고 하죠. 여러분은 카뮈의 이러한 삶의 태도를 어떻게 보셨나요?

인간으로 하여금 애써 일하게 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게 하는 모든 것은 희망을 볼모로 이용하고 있다. 고로 거짓됨이 없는 유일한 사유라면 불모(不毛)의 사유뿐. 부조리의 세계에서 어떤 개념이나 어떤 삶의 가치는 그 불모성*에서 측정된다. (p.120)
*불모성 : 아무런 발전이나 결실이 없는 성질

 

 

 

6.

카뮈는 <부조리의 인간>을 통해 세 가지 인간상을 제시합니다. 이에 앞서 카뮈는 여기서 제시되는 예시들은 “윤리적인 규칙들”이 아닐뿐더러 “반드시 추종되어야 할 예도 아니고” “꼭 모범이 되지도 않”(p.119) 는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그는 다만 ‘돈 후안주의’, ‘(연)극’, ‘정복’을 통해 부조리의 “인간 개개인이 보여주는 구체적인 삶의 예증들과 그 숨결”을 제시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지요. 여러분은 세 가지 중 어떤 방식이 가장 인상적이셨나요?

돈 후안주의
유혹하는 일이 그가 하는 일이다. (중략) 돈 후안이 실천하고 있는 것은 질을 지향하는 성인의 그것과는 반대로 양의 윤리학이니 말이다. 사물들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의미를 믿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부조리의 인간이 지닌 특성이다. 해서 그는 열에 들뜬 얼굴들 혹은 감탄으로 가득한 얼굴들을 편력하고, 채집하고, 불사른다. (중략) 그는 여인들과 만날 수 있는 횟수를 최대한 이용함으로써, 그 여인들과 함께 제 삶의 모든 기회들을 남김없이 소진할 뿐이다. (p.125~146)
 
극(연극)
부조리의 인간은 정신이 연기 감상을 그만 멈추고 그 안으로 직접 돌입하려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저 모든 삶 속으로 침투하는 것, 그 다양한 삶들을 두루 체험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 삶들을 말 그대로 연기해내는 것이다. (중략) 배우는 필연적으로 소멸하는 것 가운데서 군림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세상 모든 영광들 중에서도 배우가 누리는 영광이란 가장 덧없는 것이다. (중략) 그렇기에 배우는 무수한 영광, 자신을 바쳐 자기 자신을 겪어내는 영광을 선택했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사멸한다는 사실에서 최선의 결론을 이끌어낸 자가 바로 배우인 것이다. (p. 134~135)
 
정복
비록 모욕당하긴 했어도, 육체야말로 나의 유일한 확실성이다. 나는 육체로만 살 수 있을 뿐이다. 피조물의 세계가 곧 나의 조국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부조리하고 부질없는 노력을 선택했다. 바로 그렇기에 나는 투쟁의 편에 섰던 것이다. (중략) 위대함은 이제 항거와 내일 없는 희생 속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p.150~151)
 
그렇다, 인간이야말로 인간 자신의 목적이다. 그것도 유일무이한 목적이란 말이다. 만일 인간이 그 무엇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 삶 속에서다. (p.151)

 

 

 

7.

신화 속 인물인 시시포스는 “이 땅에 대한 열정들 때문에” “아무것도 성취해 낼 수 없는 일에 온 존재를 다 바쳐야 하는”(p.203) 형벌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는 끝없이 “거대한 돌덩이를 쳐들어 굴려 올리”고, “또 그 돌덩이가 수백 번이고 다시 시작되는 경사면을 힘겹게 타고 오르도록 떠받”칩니다. 카뮈는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으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근원을 향해 다시 걸어 내려가는 한 인간의 모습”에서 “바위보다도 더 강하”고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한 시시포스를 발견합니다. “되돌아 내려가는 순간, 이 잠깐의 휴지(休止)”(p.204) 속에서 “모든 말 없는 기쁨”을 느끼는 시시포스에게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자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 됩니다. 여러분은 카뮈의 이러한 해석을 어떻게 보셨나요?

 

우리는 시시포스가 부조리한 영웅임을 진작에 알아보았다. 그는 그 자신의 고뇌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느낀 온갖 정념들로 인해 부조리한 영웅인 것이다. (p.203)
 
경련하는 얼굴, 바위에 바짝 기대 붙인 뺨, 진흙으로 뒤덮인 돌덩이를 받치고 있는 한쪽 어깨와 그것을 괴어 버티고 있는 한쪽 발에서 느껴지는 구원의 호소, 돌을 되받아 끌어안는 저 팔 끝하며, 흙투성이가 된 두손에서 전해지는 저 온전히 인간적인 확신만이 엿보이는 것이다. (중략) 저 기나긴 노력 끝에, 비로소 목표는 달성된다. 바로 그 순간, 시시포스는 돌덩이가 순식간에 저 아래 세상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곳에서 다시금 산꼭대기를 향한 바위를 끌어올려야만 한다. 그는 또다시 들판으로 내려간다. (p.203~204)
 
그러나 시시포스는 신들을 부정하고 바위들을 들어올리는, 보다 차원 높은 성실성을 가르쳐준다. (중략) 그에게는 이 돌 부스러기 하나하나가, 캄캄한 밤 이 산의 광물의 섬광 하나하나가,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무수한 산정들을 향한 투쟁, 그것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시포스를 상상해야만 한다. (p.208)

(+) 우리 삶에서도 발견되는, 시시포스의 바위와 같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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