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켓몬 스티커를 샀는데 빵이 덤으로 왔어요. 때는 99년도. 치토스에서 나오는 따조가 한참 유행이 지났고 슬램덩크의 전성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 같다. 혜성처럼 등장한 포켓몬스터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중학생이었을 무렵 샤니 빵을 사면 포켓몬스터 스티커가 들어있었다. 당시의 인기를 반영한 마케팅이었다. 결과는 엄청났다. 그 시절 초, 중고생들에게는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빵을 사 먹었던 기억들이 다 있을 것이다.
나도 스티커를 갖고 싶어서 빵을 사본 적이 있다. 500원짜리 샤니빵. 나는 그 중에 초코롤을 좋아했다. 부드럽고 내가 좋아하는 초코크림이 듬북 든 500원짜리 롤케이크. 그런데 초코롤을 사면 ‘또도가스’나 ‘로켓단’의 케릭터들만 자꾸 나오는 것이다. 몇몇 친구들은 전설의 ‘뮤’같은 스티커를 가지고 있었다. 부러웠다. 친구들이 빵을 잘 골라야 한다고 했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같이 고르러 갔다. 빵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고 있으니까 슈퍼 주인아저씨가 화를 냈다. 나는 깜짝 놀라 소보로빵을 집어들고 계산을 했다.

슈퍼 앞에서 친구들과 다같이 빵을 뜯었다. ‘고라파덕’이 나왔다. 이미 3개나 가지고 있는 스티커였다. 다른 친구들의 스티커를 슬쩍 본다. 울상이 된 녀석은 ‘디그다’가 나왔다. 나는 친구들과 서로 없는 스티커를 바꿨다.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스티커를 교환하고 빵을 한 입 베어물려고 하는데, 친구들이 길에다가 빵을 버렸다. 아깝게 왜 버리지? 멀뚱이 처다보고 있으니까 다들 빵을 이미 버리고 스티커를 모으는 책받침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집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 혼자만 빵을 먹으려니 이상했다. 하긴 내가 크게 좋아하는 빵도 아니잖아.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바닥에 빵을 내던졌다. 그리고 평소 잘 하지도 않던 욕도 했다.
‘eight, 18~ 난 왜 이렇게 나온 것만 나오냐~’
나는 괜히 실내화 가방을 휘두르며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친구들이 나를 보고 깔깔거렸다. 안심되었다.
하나둘 씩 집으로 가는 길에 찢어지고 같은 방향인 친구 하나만 남게되었다. 그 녀석이 갑자기 대뜸 하는 말이, ‘나는 빵을 왜 버리는지 모르겠어. 돈 아까워.’란다. 너도 빵 버렸으면서.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고 깔깔거리다가 다음부터는 빵을 버리지 않고 먹기로 했다. 그리곤 스티커도 모으지 않게 되었다.

슈퍼 앞에 뜯어진 채로 수북이 쌓여있던 빵을 보고 슈퍼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많던 빵들은 정말로 그대로 다 버려졌을까?
그 때 그 스티커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내가 정말 스티커를 원했던 것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던 것이지 스티커를 가지고 싶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스티커를 들고 으스대는 친구가 부러웠던 것이지 스티커를 가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린 나는 주목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스티커를 모으듯이 돈을 모으고 있다. 무엇을 위해 모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없으면 불안하니까. 남들이 하는 대로 돈을 모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돈을 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행복은 버려진 빵처럼 길 위에 나뒹굴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해지려면 빵을 먹어야지 스티커만 모아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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