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터를 키우기로 했다. 털복숭이 친구를 하나 더 들이기로 한 것이다. 처음엔 셋째 강아지를 들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음 속으로만 키우고 싶었는데, 아내가 셋째 이야기를 살짝 흘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셋이나 산책 시키고 케어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우리에게는 셋째 강아지는 불가능. 그래서 포기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햄스터 사진을 보내왔다. 와……. 너무 귀엽잖아. 잊고 살았다. 햄스터의 귀여움을. 나이 서른이 넘어서 햄스터라니. 햄스터는 초등학생, 중학생만 키우는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관념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자그맣고 귀여운 털복숭이를 잊고 살았다니. 아내가 나의 작은 털복숭이들 사랑에 불을 질렀다.
나의 부모님은 털복숭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유년 시절 동물 친구들을 집안에 들여본 일이 없다. 그래서 20대가 되고나서 자취를 하면서, 아내와 연애를 하면서 햄스터를 키운 일이 있다. 버찌, 달래라는 정글리안 햄스터를 시작으로 나중에는 찹쌀이라는 이름으로 펄 햄스터까지 들인 일이 있었다.
햄스터를 셋을 키우면서 정형행동을 하는 녀석들이 생겼다. 햄스터가 지능이 낮아 하는 행동인줄로만 알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반푼이들이라 말하며 둘이 합쳐야 한 푼이 되니 우리는 천생연분이라고 농담하곤 했는데, 햄스터를 보면서 집 안에 생명들 중 하나는 ‘정박아(정신박약아동의 줄임말로 비하성 발언이나 비하의 의미를 크게 두지 않았었다.)’라고 생각했다. 종종 햄스터 우리를 지켜보면 셋 중 하나는 정형행동을 하곤 했으니 정박아라는 말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셋이 돌아가면서 꼭 한 마리만 그랬다.
반푼이들과 정박아. 그 때는 몰랐다. 햄스터는 그냥 케이지 안에 톱밥을 깔아주고 쳇바퀴를 달아주면 끝인 줄 알았다. 핸들링도 쉽게 될 줄 알았고, 사료도 마트에서 파는 가장 저렴한 사료를 사다 줬다. 케이지를 미로 형태로 직접 제작하기도 하고 꽤나 정성을 쏟았다고 생각했다. 수명이 다해 죽었을 땐 눈물을 흘리며 상자에 넣어 묻어주기 까지 했다.
그런데 후추와 율무를 들이면서 동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다. 이제는 동물 친구를 들이기 전에 충분한 공부를 한 뒤에 결정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햄스터에 대해서 공부를 했을 때 과거의 나는 정말로 반푼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햄스터는 5000제곱센치미터의 이하의 공간에서 정형행동을 한다. 버찌, 달래, 찹쌀이의 행동은 공간이 너무 좁아서 생긴 현상이었다. 햄스터 케이지는 최소 가로 1m, 세로 50cm 이상의 공간이 필요하다. 최소의 크기이다. 또한 합사를 하면 안된다. 이부분은 과거의 나도 지켰던 부분이었다. 이러니 반푼이가 맞는 셈이다.
햄스터 케이지를 고르는데 사흘이 걸렸다. 기성제품들은 최소 공간도 확보되지 않은 제품들이었다. 온라인이나 마트에서 파는 상품들이 이미 최소 공간이 배려되지 않은 사이즈이니 사람들이 햄스터는 작은 공간에서 사는 동물로 오해할 만 했다. 야생의 햄스터는 주로 사막지역에서 많이 서식하며 활동반경이 1마리당 3~5km가 된다. 때문에 쳇바퀴를 넣어주는 것이다. 직진 본능과 활동반경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함이다. 결코 작은 생명이 쳇바퀴를 구르는 유희를 구경하기 위함이 아니었던 것이다.
MDF 합판에 시트지를 붙이거나 리빙박스 여러개를 이어주거나 아크릴케이지를 주문제작하거나 여러 가지 방법들을 조사했다. 물론 가격도 조사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결국 나는 아크릴 케이지를 원하는 사이즈로 주문제작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크릴 케이지를 만드는 데 17만원이 들었다. 시중에서 파는 작은 햄스터 케이지가 3~4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큰 지출이었다. 120cm*60cm의 넓이를 커버해줄 베딩을 사야 했다. 은신처, 장식용, 장난감, 식기구를 제외하고 베딩과 모래, 쳇바퀴 그리고 좋은 사료를 갖추는데 13만원이 들었다.
햄스터가 생존하는데 정말 필수적인 최소의 요건을 마련하는 데 든 비용이 30만원이었다. 이제 이 곳에 은신처나 미로룸, 밥그릇과 물그릇 등을 마련하고 꾸며주기 시작하면 20만원 더 들 것이었다. 햄스터를 키우는데 초기 비용이 50만원 정도 드는 것이다. 이것은 햄스터를 입양하는데 드는 비용은 제외한 것이다.
햄스터를 키우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초기 비용에 대한 감당이 되는 사람들이었으면 한다. 초, 중학생들이 쉽게 감당할 비용은 아닌 것 같다.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인 것이다. 성인 또한 작은 동물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말고 이만한 투자를 할 여력, 또는 마음이 있는지 점검해 봐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1200mm*600mm 사이즈는 기본적인 책상의 크기다. 골든햄스터의 경우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높이를 600mm를 권장하는데 책상의 높이가 보통 720mm이다. 그러니 책상 하나를 둘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결코 쉽게 생각할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혹, 햄스터 케이지 제작을 위한 도면이 필요하신 분들을 위한 아래 도면과 그림을 공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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