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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퉁의 기록/자유 에쎄이

Essay 017 : 심란, 우울

by 구루퉁 2021. 5. 4.

 

  마음이 심란한 날들이 있다. 그냥 이유가 없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다. 날씨가 궂어서 기분이 영 풀리질 않는다. 심난하기 때문에 심란해진 걸까. 잘 생각해보면 형편이나 처지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심란할까.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어차피 할 일도 다 끝내둔 상태라 꼭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워서다. 코로나블루인가. 여행을 가면 좀 나아질까. 여행을 다녀오면 나아지는 것은 그때뿐이었다.

  삶이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없고, 내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바꿔나가고 싶은 욕망은 크다. 과도하게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려다 보니 우울증이 온 거라고? 모순이다.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든다는 것은 살고 싶은 욕구이고, 우울증은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끝내고 싶은 욕구이다. 그러니 우울의 원인은 더 나아질 수 없거나, 변하지 않는 어떤 내 삶의 지점들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못 견디겠는 것일 테지.

  허리가 아프다. 빠른 사람들은 서른이 넘으면서 지병 하나씩 생기기 시작한다. 나는 허리로 온 것 같다. 예전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 몸이 예전 같지가 않다고 하면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는 체험으로 심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 말뜻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을 것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다들 몸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다.

Photo by Sam Burriss

  몸은 계속 이렇게 안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테고 운동을 해서 좋아질 시기는 슬슬 지나고 있다. 10~20대에는 운동을 하면 지금보다 몸이 더 좋아진다는 느낌이 있었다면 30~40대엔 유지한다는 느낌이 강하고 50~60대에는 최대한 덜 망가지기 위해 하는 느낌이다.

  이렇게 내 몸 하나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질 못한다. 늙어간다는 것은 사실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이것은 아직까진 절대진리와 같아서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들고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영혼이 깃든다는 말이 있다. 몸이 하루하루 죽어가니 마음도 죽어가는 모양이다. 아니라면 몸과 정신의 균형이 무너졌거나.

  사무실에 앉아서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리며 마음 문을 두드려 본다. 마음은 육체를 따라가니 이유 없이 웃어본다. 바보처럼 그냥 모니터 앞에서 웃음을 지어본다.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같다. 그런데 무엇인가 근본적인 문제를 덮어두고 위장한 기분을 덧씌우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근본적인 문제라 함은 왜 사는가이다. 죽을 이유도 없지만 살 이유도 없다. 메슬로우의 욕구이론 5단계를 보면 생리욕구, 안전욕구, 소속과 사랑욕구, 자아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있다. 하위단계가 만족되지 못하면 상위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5단계까지 나아간 것일까. 아무래도 4단계를 해결할 수 없어 포기했다면 비뚤어진 채로 5단계로 가는 것은 아닐까. 나도 4단계인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귀촌을 한 계기도 그렇지만 이제는 타인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다 보니 조금 비뚤어지게 4단계의 욕구가 해결된 모양이다.

  허리가 아프다. 생각도 그만하고 싶다. 세상 사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알 수 없는 니힐리즘이나 페시미즘에 빠진 것은 아닌가 싶다가도 거기에 빠지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싶기도 한 것이다. 몸이 불편하면 이렇게 오만 생각이 다 든다.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 듯이 의학이나 과학에서 말하는 몸의 균형과 운동이 완벽할 수 없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은 뒤로하고 옥상에 올라가 스트레칭이나 해야겠다.

 이렇게 오늘도 살아낸다. 생각은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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