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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퉁의 기록/자유 에쎄이

Essay 019 : 스텐드업 코미디

by 구루퉁 2021. 12. 8.

 

아내와 함께 대구에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에 차에서 아내가 말했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인생을 통찰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스탠드업 코미디는 유병재씨처럼 무대에 서서 하나의 마이크만 들고 말로써 관객을 웃기는 코미디 형식이다. 미리 짜놓은 꽁트를 주로 하는 한국 코미디언들과 달리 서구권에서는 이러한 형식을 하는 사람들을 일반적인 코미디언으로 여긴다. 일본의 만담과는 또 다르게 혼자서 입담만으로 관객을 휘어잡아야 한다.

애드립도 아니고 시사도 아니다. 입담으로 치면 트위터, 말장난이나 상황들은 수많은 짤방들이 난무한다. 그렇다보니, 사실 그래서인 것은 아닐테지만 한 가지 주제, 주로 개인적인 경험담들을 가공한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는 관객들이 듣지 않으니 나만 아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주로 해학이 담긴다.

아내는 이것이 개인의 경험과 부조리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내는 마법적인 일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최근 읽은 책에서 그랬단다. 풍자와 해학을 통한 희화화를 통해 개인의 아픔이나 어떤 내밀한 서사를 웃음으로 치환하면서 스스로가 치유되는 경험하게 된다. 관객 입장에서도 비슷한 아픔이나 경험, 부조리 등을 공감하면서 그 것이 웃음을 통해 치유되거나 그냥 웃기거나.

나는 최근 우리나라의 정서가 비하, 비꼼, 비난을 넘어 혐오의 정서로 넘어가는 형상에 대해 조금 걱정이 들었었다. 그것을 생각해보면 스탠드업 코미디는 굉장히 고급스럽다. 개인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장르이지만 아내의 말대로 내 인생의 스탠드업 코미디 서사를 생각해 보았다. 사실 도로는 퇴근시간에 걸려 서대구IC 진입에만 오랜 시간이 걸릴 정도로 가다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심심했던 탓도 있다. 아내도 나도 글 쓰는 사람이니 한 입담 자랑할 수 있다면 스탠드업 코미디 한 번쯤 도전해 볼 법 하지 않은가.

내 인생의 웃픈 상황, 한 줄기로 통찰해 본다면 어떤 사건이 좋을까 고민하던 중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보통 흑역사를 떠올리면 학창시절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튼 나는 고등학교를 예술고등학교로 다녔다. 그곳에서 한 학년 선배와 매우 친해졌는데 그 선배가 자살을 하겠다며 마지막 여행을 가자고 했다.

당시는 1학년이 끝나가고 2학년으로 넘어가는 봄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기에 여행을 하다가 학교에 가야했지만 교과과정 수업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니 과감하게 학교를 제끼겠다는 결심이었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무릇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나 하는 자아도취도 한 몫했고, 친했던 선배의 마지막을 지켜봐 준다거나 막는다거나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Photo by Roman Hnydin

초등학교, 중학교 모두 개근상을 탈만큼 부모님은 아파도 학교가서 아파라는 주의셨기에 허락을 구하긴 어렵겠다는 판단 아래, 무작정 떠나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여행 좀 다녀오겠노라고. 부모님은 내 전화에서 옆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고, 모범생이라 여긴 제 자식이 이럴 리 없다는 믿음으로, 무려 경찰에 납치신고를 했다. 내가 전화기를 꺼둔 탓도 있었겠지만 나는 이삼일이 지나 핸드폰을 켰을 때 경찰관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나의 여행은 납치가 되었다가 가출이 되었다. 학교에서도 한 바탕 난리가 났었다. 담임 선생님이 너만 힘든게 아니다, 너보다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가출을 하느냐고 일침을 놓으시는 상황.

여기까지 얘기하다 보니 아내가 내 주위에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그러고 보니 가장 친한 친구도 선배도 아내도 모두 자살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본인들에게는 심각하지만 남들에게는 매우 우스울 수 있는 에피소드들. 나의 상처나 아픔, 내가 겪은 부조리 등에 대한 해학이나 풍자는 찾지 못했지만, 내가 선택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통점을 찾게 되었다. 나는 자살을 생각하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무릎을 탁치는 무엇이었다.

이래서 뭐든 해보는 것이 좋다. 해보지 않으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뭐라도 하나 건지니까. 이래서 아내와 대화가 즐겁다. 이런 것이 아마 인간관계에 있어서 코드라는 것일 터이지. 아무튼 스텐드업 코미디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꼭 관객이 없더라도 독백이 아닌 생각만으로도 해볼 만한 일이지도 모른다. 아내의 말대로 스텐드업 코미디는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가출이 되어 다녀왔던 그 곳, 대구를 아내와 함께 다녀오면서 꽉 막힌 길 또한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Photo by Orkun Az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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