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Essay 020 : 닥수 훈수-시골 개 구조기(1)
닥수와 훈수를 만난 건 예년처럼 집 앞의 강 길을 따라 트래킹을 하다가였다. 우리는 해마다 겨울이 되면 후추와 율무,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강 길을 따라 운동 겸 트래킹을 했다. 강을 따라가다 보면 이내 길이 끊기고 사람을 마주치지 않기 때문에 그 길을 선호했다. 그 날따라 평소 가던 길 보다 좀 더 멀리까지 갔다. 옛날 파이프 공장 터가 있던 곳으로 작년 봄에는 멧돼지 소리에 겁먹고 돌아섰던 길이었다. 그 날은 무슨 일인지 공장 터를 지나서까지 걸었고 시멘트벽돌로 만들어진 작은 창고가 보이자 마침내 닥수와 훈수를 만나게 되었다.
닥수와 훈수는 닥스훈트 강아지다. 닥수는 수컷, 훈수는 암컷 강아지다. 즐겨보는 웹툰에 서브케릭으로 나오는 닥스훈트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 왕왕 짖는 소리와 함께 닥수가 나타나고 곧이어 훈수가 나타났다.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이곳으로부터 2~3km 가량 떨어져있고 가장 가까운 마을도 우리가 사는 곳이었기에 이곳에서 다른 강아지를 마주치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후추와 율무가 다칠까 얼른 우리 개부터 안아들었다. 우리는 더 볼 것도 없이 돌아서 나오는데 닥수가 따라나섰다. 나는 발을 구르며 닥수에게 겁을 주었다.
“가! 임마, 너네 집으로 가! 우리는 돌아갈 테니 어서 가!”
훈수는 곧 돌아섰지만 닥수는 돌아서는 듯 하더니 우리를 계속해서 따라왔다. 근처 풀숲으로 나뭇가지도 던져보고 소리도 쳐 보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따라왔다. 결국 닥수는 그렇게 우리 마을까지 따라온 것이다. 그렇게 닥수는 우리 마을에서 며칠을 떠돌았다.
두 달 전인가 닥스훈트 한 쌍이 우리 마을에 나타났다가 차에 치인 일이 생각났다. 한 마리는 결국 죽었고 한 마리는 이웃 할머니가 유기견 신고를 통해 포획해 갔다고 들었다. 이러다가 닥수가 차에 치이면 어떡하지? 결국 책임감을 느낀 우리는 군청을 통해 유기견 신고를 하게 되었다. 닥수가 곧잘 사람을 따랐기에 포획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닥수야, 이리 와!”
닥수를 부르자 알은체를 하며 다가왔고 나는 번쩍 들어 안아 케이지에 넣었다. 군청과 유기견 보호로 연계되어있는 읍내 동물병원에서 사람이 왔고 닥수를 데려갔다. 닥수는 2주간의 주인을 찾는 공고기간을 거쳐 정식으로 유기견이 되었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닥수를 입양할 새 주인을 찾았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는 주인처럼 입양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훈수한테 가보기로 했다. 분명 사람이 살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곳으로 가면 무언가 단서를 얻을지도 모르고 날씨가 점점 추워졌기에 훈수가 걱정되기도 했다. 이번에는 후추와 율무를 집에 남겨둔 채 아내와 둘이 트래킹에 나섰다. 익숙한 공장 터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외딴 창고가 보이자 훈수가 왕왕 짖으며 나타났다. 우리는 훈수를 따라 창고로 다가갔다.
버려진 폐기물들과 개 사료 봉지, 어떤 동물의 뼈다귀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사료를 파이프에 넣어 아래가 사라지면 위에서 조금씩 쏟아지도록 해둔 흔적이 있었다. 한쪽에는 플라스틱 바구니에 사료가 잔뜩 쌓여있는 것도 보였다. 다른 한 곳에는 음식물 쓰레기 찌꺼기가 보였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훈수가 먹을 만한 물그릇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오간 흔적은 있어 보이지만 얼마나 오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없어진 닥수를 찾지도 않는 사람이 주인 일 것이다. 훈수는 우리가 둘러보는 내내 우리 곁에서 꼬리를 흔들다가 어느 순간 개집으로 쏙 들어갔다 나왔다.
아, 개집에는 훈수의 새끼들이 있었다. 꼬물거리는 것이 한 달 남짓 되어 보였다. 그래서 훈수는 우리를 따라오지 못했던 것이었다. 우리가 훈수를 처음 보았을 무렵 막 새끼가 태어났던 것 같았다. 새끼들을 살펴보기 위에 개집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버리는 옷가지들이 깔려있었지만 갓난쟁이들이 어디 똥오줌을 가리던가. 꼬물거리는 네 마리 새끼는 제 오줌으로 젖은 축축한 옷가지에 위에서 겨울을 나고 있었다.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천천히 주위를 돌다 보니 개의 두개골로 보이는 뼈가 보였고, 근처에서 죽은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갈색 닥스훈트의 사체도 보였다. 만약 주인이 있다면 이건 너무 심한 방치였다.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훈수가 마실 물과 물그릇 그리고 새끼들에게 깔아줄 새 담요, 개집을 덮어줄 이불을 챙겨왔다. 다시 오줌으로 젖어들겠지만 잠시간 뽀송할 담요를 깔아주고 개집을 이불로 덮어주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무거운 돌을 얹어 놓는 것도 있지 않았다. 물그릇에 물을 부어주었다. 내일이면 얼어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하루에 한 번 운동 삼아 들려 물이라도 주고 오자고 다짐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시간 내내 훈수와 그 새끼들이 보낼 추운 겨울을 떠올렸다. 담배를 태우러 밖으로 나서자 매서운 바람이 두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른 닥스훈트들과 무리생활을 하다가 혼자 남겨져 새끼를 돌봤을 훈수의 한 달여 시간들이 매서운 바람처럼 다가왔다. 그 날 밤 잠자리에서 아내가 말했다.
“일단 데려오자. 주인이 있든 없든 이대로 두면 다 죽을 텐데 우리가 개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그냥 두고 보면 안 될 것 같아.”
죽은지 얼마 안 되어 보이던 개 사체와 누가 잡아먹었는지 모르겠는 개의 두개골이 떠올랐다.
“그래,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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