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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퉁의 기록/자유 에쎄이

Essay022 : 훈수의 운명-시골 개 구조기(3)

by 구루퉁 2022. 2. 24.

Essay022 : 훈수의 운명-시골 개 구조기(3)

다섯째 날은 일요일이었고 월요일이 되면 경찰서에 가서 땅주인이 견주인지 알아보러 갈 참이었다. 이런 절차들을 밟아둬야 추후에 진짜 견주가 나타나 문제제기를 할 때 ‘견주를 찾으려는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찾지 못하여 분양’이라는 카드가 된다. 우리는 닥수도 찾지 않았고 그 전에 닥스훈트 한 쌍도 주인을 못 찾았으며 창고에 연락처를 붙여두었음에도 일주일이 다되어가도록 연락이 없었기에 주인이 없는 쪽에 무게를 두었다. 그래서 입양처도 알아보고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사진도 뿌려댔다. 주변에 닥스훈트를 입양할 사람이 있는 알아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후추, 율무, 훈수를 데리고 다같이 동네 산책에 나서는 길이었다. 다음 날 파출소에 갈 계획도 세워놨고 새끼들도 두 마리나 갈 곳이 정해졌기에 기분 좋게 길을 나섰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향하는 길, 전화가 왔다.
“우리 개 데려갔어요?”
훈수의 주인이 나타났다. 새끼가 네 마리나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색깔까지 정확히 말하는 걸 보니 확실히 주인이 맞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주인을 만났다.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동물등록도 안하시고, 물도 안주고, 개 사체도 방치해두시고, 전부 신고하면 동물학대로 벌금이 나온다고 하자 견주는 알겠단다. 병원에서 진단 받은 이야기도 해드리니 큰 일했다며 고맙다고 하시고는 훈수와 새끼들을 데려갔다.
“혹시 다시 거기로 데려가시나요?”

견주는 훈수의 어미가 죽어있는 그곳으로 다시 데려간다고 한다. 동종의 사체를 치우지 않고 키우는 것은 동물학대에 해당한다.

도시에 살고 있어서 집으로 데려갈 순 없다. 다시 그 열악한 환경에 개들을 방치해 두시겠다고 한다. 근처 마을이 고향이고 거기에 조카가 살고 있어서 조카가 한 번씩 들려 관리를 할 것이라는 말로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말잇못. 이 신조어가 딱 우리의 심정이었다. 우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동안 그 조카라는 분이 관리를 해 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지금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는 뜻. 나는 병원 영수증을 견주에게 보여줬다. 견주가 지금은 돈이 없으니 다음에 들려서 주겠단다. 가시면서 젖을 떼면 두 마리 정도 주신다는 말도 남겼다.


집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무언가 허탈하고 텅 빈 것 같은 평화였다. 후추와 율무는 이제 훈수를 피해 벽 쪽으로 붙어 다니지 않아도 되었고 물도 밥도 마음 편히 먹게 되었다. 기껏 새끼들 구충을 해놨더니 다시 또 뱃속에는 회충이 그득그득 들어차겠지. 훈수는 또 다시 추운 겨울 밤을 새끼들과 홀로 보내게 되겠지. 밤이면 멀리서 웨에엑 하는 고라니 소리를 들으며 멧돼지가 지나가는 그곳에서 너구리들과 영역 싸움을 하진 않을까. 심장사상충과 아나플라즈마 약도 못 먹겠지. 결국 그 곳에 있던 다른 개의 사체처럼 훈수가 차가운 바닥에 눕게 되는 건 아닐까.

견주가 물이라고 준 곳에는 빗자루가 있었고 밥은 음식물 쓰레기를 비닐째로 급여했다.


우리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새끼들이 젖을 다 뗀 건 아니지만 분유에 불려둔 사료를 잘 먹는다며, 두 마리 주시기로 하셨으니 지금 데려가면 안 되겠냐고 통사정을 했다. 아내가 너무 서운해 한다며 우리가 잘 키울 테니 새끼를 지금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지금 데려가면 새끼들이 죽는다며 반대하셨다. 할아버지, 거기 그냥 둬도 개들 다 죽게 생겼어요. 개를 한두 번 키워보는 것이 아니라며 어미개가 새끼들 보호를 기가 막히게 한다는 것이다. 다음 주에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대요. 더 추울 때도 어미개가 새끼들 잘 키우지 않았느냐 말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이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으로 견주는 이삼주에 한 번 오는 것 같다.


영하 10도 이하의 추위에 죽지 않았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따뜻한 곳, 안전한 곳에서 케어 받을 권리가 있다. 할아버지 세대의 시골 개에 대한 인식이 여실히 보였지만, 대단히 악의적이고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인지 내 생각만 옳다고 여겨지는 걸까? 아니다. 그건 아닐 것이다.
인간동물과 같이 비인간동물 역시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권을 지니고 있다. 고통을 피하고 학대 당하지 않을 권리. 그것을 지켜주는 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시대가 지나면서 윤리에 대한 개념도 바뀌어 간다. 옛날에는 여성을 납치해서 결혼하는 보쌈 문화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강력한 범죄행위로 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결국 훈수의 새끼 두 마리를 데려오는 것을 허락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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