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023 : 극적 상봉-시골 개 구조기(4)
견주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관심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새끼들의 성비는 암컷 3마리와 수컷 1마리였다. 우리는 암컷 중에서 가장 덩치가 작아 도태될지도 모르는 녀석과 수컷 1마리를 데려왔다. 그냥 두면 근친교배가 될 것 같아서, 일부러 수컷을 데려왔다.
분유를 탄 물에 어린 강아지용 사료를 불려서 배불리 먹였다. 새끼들은 배가 빵빵해져서 우리가 마련해준 폭신한 잠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먹고 자고 싸는 것이 일이라 배불리 먹이면 딱히 어미를 찾는 것 같지도 않았다.
새끼 강아지가 있다는 소식에 지인이 놀러 왔다. 지인들은 한 바탕 견주를 욕하곤 새끼들을 잔뜩 구경하고 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고 우리는 두 마리라도 좋은 곳으로 보내주기 위해 다시 입양자를 찾았다.
다음 날은 후추와 율무의 미용이 예약되어 있던 날이었다. 나가기 전에 새끼들에게 밥을 먹이고 잠을 재웠다. 수시로 확인할 수 있게 펫캠도 설치해두고 후추와 율무를 데리고 읍내로 나갔다.
아직 추운 겨울이라 부분미용을 맡겼고 후추와 율무는 뽕실한 한 마리 양이 되어 돌아왔다. 미용을 하는 동안 아내와 오랜만에 읍내에서 점심도 먹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앞 길모퉁이를 도는데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훈수가 나타났다. 2~3km 가량을 혼자 걸어온 훈수가 꼬리를 흔들며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새끼들을 찾으러 온 걸까? 따뜻한 잠자리가 그리워서 온 걸까? 어찌 되었든 간에 훈수의 주인이 나타난 이상 우리가 거둬줄 수가 없었다.
나는 훈수의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큰 일 났네. 큰 일 났어. 저거 바람 들어서 어쩌냐. 새끼 찾으러 간 거야. 그러니까 좀 더 있다가 새끼들 데려가라니까. 큰 일 났네.”
견주는 우리를 탓했다. 우리는 우선 견주가 올 때까지 훈수와 나머지 새끼들까지 전부 보호하겠다고 말했고 견주는 흔쾌히 허락했다. 견주는 나흘 뒤 금요일에 오겠노라 말했다. 우리에게 주겠다던 두 마리도 데려갈 모양이었다. 우리는 훈수를 처음 발견했던 곳까지 걸어가서 남은 새끼 두 마리도 데려왔다. 훈수 가족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때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아내가 동물단체에 연락해 자문을 구해보았다.
동물단체 자문을 통해 알아낸 것
1. 밥과 물을 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만, 음식물 쓰레기라 할지라도 밥이 있고, 더러운 물이라도 물이 있다면 이 자체로 동물학대가 성립되기는 어렵다.
2. 단, 동물을 사육하는 환경에 동종 동물의 사체가 방치된 경우 이는 학대행위다.
3. 일반적으로 견주가 있음에도 반려견 등록을 하지 않았다면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지만, 동물병원 접근성이 낮은 일부 지역에서는 동물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 (지자체별 상이)
4. 동물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해당 지역의 동물보호과 담당자가 긴급 격리 조치를 할 수 있다.
5. 사유지라 할지라도 동물학대 민원이 들어왔다면 담당자가 부지 주인에게 허락을 구한 뒤 방문할 수 있다. 만일 주인이 방문을 거부할 시 담당자가 방문 24시간 전에 방문 통보를 하면 사유지에 들어갈 수 있다. 주인이 이를 저지한다면 처벌할 수 있고,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 (공무집행 방해 등)
6. 민원인은 담당 공무원에게 사후 처리에 관한 보고를 받을 수 있다. 개선된 상황에 대한 사진을 요구할 수 있고, 이를 거부한다면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다.
동물단체 자문을 통해 이런 경우엔 공권력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군청에 민원을 넣었다. 담당자가 조만간 현장을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동종 견종의 사체가 있고 사료를 잔뜩 부어둔 상태지만 겨울철이라 물은 계속 얼어있는 상태, 우리는 담당자가 훈수를 긴급격리조치를 취해주길 바랐다. 동물단체에서 하는 말이 주인이 개선의 의지가 없고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 이렇게 민원을 지속적으로 넣어 귀찮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말을 넌지시 알려줬다.
우리는 주인에게 훈수의 건강상태, 즉 심장사상충에 걸려있고 폐 기능을 약화되었다는 말을 전했다. 주인은 동물병원은 다 장사속이라며 병원엔 왜 데려 갔냐며 화를 냈다. 그리곤 당장 근처에 사는 조카를 시켜 훈수와 새끼들을 데려가겠다고 했다. 알겠노라 했지만 조카라는 분은 오지 않았다. 말뿐이었다.
일주일 뒤 주인이 왔을 때 주기로 했던 새끼 두 마리마저 데려갈까 봐 이미 분양을 보낸 상태라고 거짓말을 했다. 주인 할아버지는 개들의 병원비는 줄 수 없다고 했고 우리는 새끼 두 마리로 갈음하자고 했지만 새끼는 그냥 주는 것이지 병원비 대신은 아니란다.
아무튼 시간이 흘러 새끼 두 마리는 안전하게 입양을 보냈다. 추후 공무원을 통해 알아보니 나머지 새끼 두 마리도 견주가 입양을 보냈다고 한다. 홀로남아있을 훈수가 걱정이 되었지만 그나마 새끼들이라도 좋은 곳에 갔을 거라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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