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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퉁의 기록/자유 에쎄이

질문의책Q2 -나를 찾아가는 질문

by 구루퉁 2022. 12. 29.

그레고리 스톡의 질문의 책

Q2. 당신은 오늘 밤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이 죽어야 할 운명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누군가에게 꼭 했어야만 했는데 미처 하지 못해서 참으로 후회스럽기 짝이 없는, 그런 얘기가 있습니까? 있다면 그것은 무슨 얘기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왜 아직까지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까?

 부치지 못한 편지, 걸지 못한 전화, 그런 느낌의 이야기일까? 자기 고백이라거나 숨겨온 진실들. 그런 것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어깨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눈빛, 목소리는.

 대학시절 문예창작학과 소설 강의 중엔 콤플렉스를 써오는 강의가 있었다. 나의 콤플렉스를 강의실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동기, 선후배들 앞에서 읽어야 했다. 대부분 읽다가 훌쩍거리고는 했다. 떨리는 목소리, 울먹임 등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정의 동요를 불러 일으켰다.

 착한아이 콤플렉스는 양반이고, 강간을 당했던 이야기나 스토킹을 해봤다는 이야기, 아버지가 세 명이라는 이야기,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들이나 학교 폭력 이야기가 나왔고, 자신의 이야기는 앞서 발표한 친구들에 비해 별것도 아닌 이야기라서 콤플렉스가 없는 것이 콤플렉스라는 사람도 있었다.

Photo by Sam Balye on Unsplash

 교수님은 그 콤플렉스에서 위악적인 인물이 나오면 매우 좋아하셨다. 발표자는 펑펑 울고 있지만 교수님은 싱글벙글해서 문학적 소재로 너무 좋다고, 소설 캐릭터로 적합해 보이는 인물들을 찾아주시며 그 인물들로 소설을 써오라고 시켰다.

 우리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감정에 빠져들었다. 교수님은 소설로 적합한 지점을 찾아주거나 너는 소설을 쓸 수 없는 사람이다.’ 따위의 말로 화를 내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강의의 목적에 충실하셨던 것 같다.

 다음 발표자들은 대체로 겁을 집어먹었다. 나의 이야기가 문학적으로 쓸모가 없으면 어떡하지? 더 슬프고 극적인 사건일수록 좋은 성적을 받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 또한 고백을 해야했다.

 나도 여느 친구들과 비슷하게 가정사를 풀어놓았다. 교수님은 내가 위선적이라며 화를 내셨다. 나는 숨김없이 사실대로 고백했고 지어내거나 꾸며낸 일도 없는데 왜 화를 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사건은 중요하지 않고 나의 시선이 중요했던 것이다. 교수님의 문학관에선 위선보다는 위악이 더 낫다.

Photo by Fa Barboza on Unsplash

 강의가 끝나면 매번 발표자를 중심으로 위로의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좀 더 서로를 알아가며 끈끈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 어떤 결핍이나 아픔이 많은 것일까. 아픔과 결핍은 예술 활동을 하게 하는 원동력일 수 있다. 스무살의 우리는 그때 그렇게 서로의 고백을 들었다.

 미처 하지 못해서 후회되는 이야기는 없다. 가슴에 응어리진 이야기는 당사자들이나 주변에 다 이야기했다. 나는 그다지 나를 숨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나는 그 사건을 바라보던 나의 태도가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 나는 위선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더 위선을 떤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기에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것이 나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슬며시 드는 생각 중 하나는 ‘그때 그 새끼한테 그렇게 한 방 먹일 걸 그랬어.’ 하는 위악적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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