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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퉁의 기록/자유 에쎄이

질문의책Q4 -나를 찾아가는 질문

by 구루퉁 2023. 1. 2.

그레고리 스톡의 질문의 책

 

Q4.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관절염을 완치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약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을 복용한 사람의 1%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그 약을 시판하는 것을 찬성합니까?

 

 약이 출시되려면 우리는 임상시험이라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절차를 간략히 확인해 보자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여 비임상시험 후 임상시험계획을 제출한다. 임상은 1, 2, 3상 임상시험을 거쳐 신약승인신청을 제출하여 허가당국(식약처, FDA )의 승인을 받은 뒤 시판을 하게 된다. 정식 승인 하에선 사전에 고지 되지 않은 포괄적인 부작용에 대해 제약사가 그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다.

 잠시 상식으로 알고 넘어갈 부분은 임상시험과 생동성시험은 다른 시험이다. 임상은 쉽게 말해 신약 개발이라 보면 되고 생동성은 카피약에 대한 시험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생동성시험도 넓은 범주에서는 임상 1상으로 취급되긴 하지만 그 목적이 다르다는 것이다. 조금 더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아르바이트로 생동성시험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참고하시길 바란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 약을 시판하는 것을 찬성하는 여부는 허가당국의 입장에서의 여부이다. 식약처의 승인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치명적인 부작용 1%가 포함된 관절염 완치약을 승인할 것인가.

Photo by danilo.alvesd on Unsplash (본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약임을 밝힙니다.)

 관절염은 진행상태에 따라 완치가 가능하다. 물론 완벽이라는 것은 없다. 관절염의 종류에 따라 진행을 늦추고 통증을 경감시키는 수준이 대부분이고 수술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질문에서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관절염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증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보여진다. 이 경우엔 완치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완치할 수 있는 약이라는 가정이다.

 이 질문은 관절염을 겪어 본 사람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의 대답이 꽤나 갈릴 것으로 보여진다. 질문이 만약 코로나라거나 모든 종류의 암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1% 치명율은 본인선택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허가 당국의 승인이 있더라도 미리 고지된 부작용이기에 제약사가 책임을 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1% 치명율은 오롯이 본인의 선택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승인이 되면 좋겠다.

 관절염으로 돌아가 생각을 해보자. 나는 관절염을 약한 정도 수준으로 겪고 있다. 관절염하면 보통 무릎관절을 제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데, 관절염 중에는 허리와 관련된 질환들도 있다. 허리가 아플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허리가 아프면 다리도 아프게 되고 종국엔 두통까지 유발한다.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급격히 악화하는 것이다. 나에겐 약을 먹고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기에 참을 수 있는 고통이다.

 그 밖에 관절염은 손목, , 어깨, 팔꿈치, 발목 등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관절에서 발생가능하다. 부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관절염을 코로나나 암질환과 동급으로 볼 수 있을까. 직접적으로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급은 아니다. 하지만 삶의 질이 악화되는 점은 거의 동급으로 생각된다.

Photo by De an Sun on Unsplash

 시판되는 대부분의 약에는 부작용들이 있다. 오히려 부작용이 너무 확실히 나타나 그 부작용에 대한 약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비아그라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질문의 의도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아무래도 생명의 위협이 되는 수준으로 생각하길 바랄 것 같다.

 충분한 설명과 상담을 통해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약의 시판에 찬성한다. 내 삶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판되는 약 중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견돼 판매금지가 되는 약들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미리 고지된 심각한 문제이다. 생명의 위협이 되는 질환은 아니지만 거의 장애를 겪게 되는 수준의 질환이기에 1% 치명율이라도 나는 찬성한다.

 이 질문을 통해 나는 국가의 간섭이나 통제를 배제하고 집단보다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금 새삼스럽긴 하다. 마지막으로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에 나온 글귀를 소개한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 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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