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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퉁의 기록/자유 에쎄이

질문의책Q1 - 나를 찾아가는 질문

by 구루퉁 2022. 12. 28.

그레고리 스톡의 질문의 책

Q1. 당신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과 함께 살려면 먼 타국으로 이민을 가야만 합니다. 당신은 앞으로 가족과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당신은 기꺼이 그 사람을 따라가겠습니까?
나는 이미 귀촌을 하면서 위와 같은 상황을 맞이 하고 있다. 아내가 먼저 귀촌을 원해서 옳다구나 귀촌 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차로 2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아내도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이곳에 온 지가 어느덧 5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마당을 갖게 된 것이 너무 좋았다. 잔디를 가꾸고 강아지들을 마음껏 뛰놀게 했다. 마당에 불을 피워 고기도 굽고 친구들도 초대해서 파티도 했다. 텃밭도 가꾸고 마음이 가는 대로 식물들도 사들였다.
가족들 친구들이 놀러오면 한껏 꾸민 집을 보여주기 바빴다. 한두 해가 지나니 정기적으로 만나는 와이프 친구(와이프를 제외하면 전부 미혼인 친구)들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들 직장 일로 육아로 바쁘기에 서운하지도 않았다.
단톡방도 그 무렵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 곳에 아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직장을 구했고 2~3년을 다니다가 퇴사를 했다. 9to6의 회사 생활에 지쳐서 귀촌한 것인데 똑같은 삶을 살 순 없었다.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니 연락하는 사람도 만나는 사람도 없게 되었다.
그러다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차를 가지고 올라간 일이 있다. 인터체인지를 지나 올림픽대로에 올라서자 환한 가로등 불빛과 대로 위에 바글바글 모여있는 자동차를 마주하게 되었다. 올림픽대로를 가득 메운 빨간 후미등에 숨이 막혀왔다. 공황장애의 초기 증상이었다. 자동차들이 바퀴벌레마냥 우글대는 기분이었고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차 안에서 약간의 공포를 느꼈다.

Photo by Mayank Sehgal on Unsplash

그날 이후로 서울에 가는 일을 최대한 피해왔다. 내 인간관계는 비약적으로 축소되었다. 가끔 서울에 사는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먼저 오기는 하지만 내가 서울로 가지 않으면 얼굴을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최근 일 년은 와이프 친구들이 한 두 번 놀러왔고, 그 밖에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만난 사람이 전부였다. 물론 명절 전 후로 처가에 들리긴 했다.
나는 시골의 적막함과 한산한 도로, 불빛이 없는 밤거리에 익숙해졌다. 외롭거나 친구들이 보고 싶은 마음이 크게 들지 않았다. 베스트프랜드는 와이프로 충분했다. 나는 강아지들과 산책을 하고 혼자 책을 읽고 아내와 넷플릭스를 보다가 침대에 누워 두런두런 떠들고 잠에 든다.
이런 삶의 모양새에 큰 불만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타국으로 이민을 가야 한다고? 얼마 전 와이프가 이민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말에 세계 각국의 이민 정보를 알아본 사람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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