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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퉁의 기록/자유 에쎄이

질문의책Q3 -나를 찾아가는 질문

by 구루퉁 2022. 12. 30.

그레고리 스톡의 질문의 책

 

Q3. 당신은 앞으로 일 년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일 년 뒤에 그토록 행복했던 일 년간의 시간을 전혀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일 년간의 행복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까? 만약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억이 없다면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나라는 존재를 기억하고 이 기억의 연속성을 통해 나는 존재하게 된다. 기억이 없다면 과거가 없어지는 것과 다름없고 현재를 인식한다면 나는 갑자기 존재하게 된다. 경험이 쌓여 지금의 나에 이르렀듯이 나의 기억이 보존되지 못하고 경험을 회상할 수 없다면, 일 년간의 행복이 내가 될 수 없으므로 무의미하다고 본다.

 이것은 의식의 영역이다. 그런데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기억, 예컨대 몸에 각인된 기억들은 어떨까. 운동선수나 무용수와 같은 몸을 쓰는 사람들은 반복훈련을 통해 몸에 기억을 각인한다.

 모닥불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따뜻함을 느끼면서 감성적이게 된다. 이것은 좋은 기억을 남기게 되었고 현대인들은 불멍을 통해 편안한 마음, 쉼을 느낀다.

 트라우마는 어떤가. 자동차 사고를 심하게 당한 사람이 도로에 나가면 몸이 굳는 경우는 몸이 기억하는 경우다.

 

Photo by Jiyeon Park on Unsplash

 

 그렇다면 나는 일 년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기억을 의식의 영역과 무의식의 영역으로 나눠 보아야 할 것이다. 일 년간의 시간을 전혀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 의식의 영역에만 포함된다면 완전히 무의미한 일은 아니다.

 행복해지면 몸은 이완되고 또 좋은 기억들을 각인했을 것이다. 스트레스가 해소가 되었을 것이고 그런 지점들은 몸 구석구석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기억에는 없지만 몸이 상쾌해지고 가뿐해진다면 일 년의 기억이 없어도 되지 않을까.

 요즘 들어 조금씩 삐걱대는 내 몸을 생각한다면 일 년즘 투자한다 셈치고 기억에 없는 일 년간의 행복을 받아들일 만하다.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여전히 무의미에 가까운 이것을 받아들일지, 실제로 일어날 일은 아니지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Photo by Natalya Zaritskaya on Unsplash

 

 한편으로 경험의 각인은 몸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님을 상기해 본다. 내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경험으로 축적된 이것은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타고난 본성, 즉 본질적인 성질에는 영향이 없다 하여도 경험을 통해 사회적인 성격은 충분히 변할 수 있다. 스트레스로 인한 성격 장애, 정신 장애, 우울증, 공포증 등이 있듯이 반대로 성립이 된다.

 나는 종종 킬링타임용 소설을 읽거나 무의미한 짤을 반복적으로 볼 때가 있다. 킬링타임은 언뜻 합리성이 결여된 시간 사용으로 보여질 수 있으나 정신이완을 하는데 충분히 도움이 된다. 내가 죽이고 있는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일 년간의 행복, 기억 삭제는 한 번쯤 받아드려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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