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을 하는 동안 봄이 성큼 다가왔다. 이제는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 겨우내 땅이 얼어서 공사를 못 하니 미루어 두었지만 이제는 담장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돈이 별로 없으니 몸으로 때우자.
지난가을에 축대나 조경석 쌓기 견적을 받아보니 이백만 원을 달란다. 포크레인 하루 부르는데 오십만 원, 조경석 돌값만 생각하면 안 된다. 25톤 트럭이었나 조경석을 트럭에 싣고 오는 비용만 해도 또 이십오만 원, 인부들 품삯에 기타 잡비까지 하면 일이백은 그냥 나가는 거라고 했다. 이걸 마무리 해야 담장을 짓는 것이다.
집 주변에 팔려고 내놓은 땅을 다지면서 나온 자연석들이 보였다. 땅주인에게 허락을 구해 자연석 몇 개를 가져가기로 했다.
“어떻게 가져가시게?”
“구르마에 옮겨서 잘 끌고가보려구요. 너무 큰 건 못 옮기고 자잘한 걸로요.”
“그래요, 그럼. 가져갈 수 있는 것만 가져가셔.”
굴릴 수 있는 돌을 하나 골라 굴려 보았다. 눈이 녹은 터라 질퍽이는 흙 위를 낑낑대며 돌을 굴렸다. 도로가로 밀고 와서 구르마에 겨우겨우 올렸다. 비는 안 오는데 땀만 비 오듯이 흘러댔다. 아, 이거 못 할 짓이네. 하지만 구르마를 잘 끌고 집까지 왔다. 돌을 놓을 자리를 삽으로 파냈다. 흙의 무게가 횡력으로 작용해 돌이 밀려 나가지 않도록 조금 깊게 파야 했다. 돌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경계석 밖으로 굴러가지 않도록 잘 고정했다.
그렇게 하나를 옮기고 하루의 체력을 다 썼다. 평일에는 엄두도 못 내고 주말을 이용해서 하루에 한 개나 두 개씩 옮겨왔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큰 공사 하네,, 고생이네, 천천히 하나씩 잘 꾸며나가네, 하시며 말을 건네주셨는데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돈이 없지 체력이 없나! 젊음의 패기로 얼굴에 두껍게 하고 작업을 이어나갈 무렵, 아내는 울산으로 지인을 만나러 가고 아무도 없던 그 날, 무지막지한 바람이 불어 우리 집 철문을 넘어뜨렸다. 임시로 강아지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막아두었던 강아지용 야외 울타리도 함께.
이제 담장공사를 어떻게든 시작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겨버렸다. 그 무렵 가장 마음에 들었던 현무암 담장석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회사에서 틈틈이 몇 개의 업체에 담장 견적을 받아봤다. 추석 때부터 설까지 상여금이나 보너스를 차곡차곡 모아두었으니 감당……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견적이 천만 원이 나왔다. 입이 떡 벌어졌다. 집을 살 때 집주인한테 천만 원을 깎았는데 이 돈이 이렇게 나가는가. 자재비 자체는 이백여만 원. 내가 하면 이백만 원. 직접 시공을 결심한 순간이었다.
못 할 것은 또 뭐람. 우리 부부는 이미 현무암 판석으로 디딤석 길을 까는 시공을 직접 해본 바가 있었다. 허리가 꽤나 아팠지만 팔백만 원이 없는 걸 어떡하나. 근처의 건재상을 통해 현무암 굴림석을 주문했다. 한 파레트에 90장, 대략 5~6헤베를 시공할 수 있다고 한다. 헤베는 건축현장에서 주로 쓰는 용어로 가로 1m, 세로 1m를 뜻한다. 즉 1제곱미터. 시멘트는 또 헤베가 아닌 루베라는 용어로 계산해야 했다. 루베는 세제곱미터를 뜻한다. 시멘트 한 포에 0.025루베 정도 시공이 가능하다고 한다. 담장의 길이 와 높이 두께 등을 측량하고 자재를 넉넉하게 산출했다. 그렇게 중장비 없이 담장을 직접 시공하기에 이르렀다.
“율무야, 사실 너만 잘하면 우린 이대로 살아도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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