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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28 : 나만의 정원

by 구루퉁 2021. 4. 8.

 

  지금까지 내 정원을 가져본 적이 없다. 헤르만 헤세 산문집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의 첫 문장이다. 나도 정원을 가져본 적이 없다. 태어난지 석 달만에 서울로 이사해서 쭉 도시생활을 해온 터라 내 정원이라는 것을 가져 본 일이 없다.

  시골에 내려오고 첫 집에서는 텃밭이 있어서 텃밭을 가꾸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사한 집에는 잔디가 잔뜩 깔려있었다. 옹벽펜스에는 어설프게 장미가 심어져 있었고 집 한 편으로 작은 텃밭이 있어 텃밭을 가꾸는데 시간을 쏟았다. 회사에 나갔고 틈틈이 집을 돌봤다. 정원을 만드는 일은 늘 마음 속에 염원이었다.

  그러다 올 겨울이 가실 무렵 봄이 오는 듯 마는 듯 하던 그 때, 담장을 쳤다. 후추와 율무 덕분이었다. 담장을 짓고나니 내 정원이 생겼다. 아내의 로망 중 하나가 자신만의 정원을 갖는 것이었다. 시골에 내려온지 4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내 정원이 생겼다.

  텃밭은 이웃을 따라 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정원은 마음 속에 심상을 그려 상상해 내야한다. 어디에 무엇을 심고 계절따라 어디에 어떤 꽃이 피어날지. 또 해가 어디에 잘 들고 어떤 식물이 양지식물인지 반양지식물인지, 또 토양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많은 변수를 고려한 상상들. 사실 지역에 따라 잘 자라는 정원수들이 정해져 있다. 예컨대 종려나무나 동백나무는 남부지방 끝자락의 더운 곳에서만 잘 자란다. 지역에 따라 겨울 온도가 다르니 월동 가능 여부까지 고려해야 한다.

담장을 짓고 나니 정원으로 꾸밀 공간이 생겼다. 담장 바로 뒤 삐죽 솟은 나무가 배롱나무이다.

  나는 가까운 옥천 묘목시장(국내 최대 묘목시장이라고 한다)을 들락거렸고 나무를 심는다고 매일 삽을 들었다. 하루라도 삽을 들지 않으면 이상한 봄맞이였다. 사실 매일 노동을 한 셈이었다. 즐거운 노동.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이 정원을 가꾸는 일은 놀이 삼아 하면 즐겁지만, 생활과 의무가 되면 즐거움이 사라져 버린다.’ 옥천 묘목시장에서 본 상인들의 얼굴이 그러했다.

  우리 집은 이웃집과 계단처럼 단차가 있는데 자연석으로 옹벽 역할을 해두었다. 담장을 쳤더니 율무가 산양처럼 그곳을 오르내리면서 밖으로 나간다. 나는 회양목을 사다가 그 앞쪽에 심어 울타리처럼 쳤다. 회양목 앞 줄에는 미스김 라일락5주 정도 심어두었다. 회양목은 키를 키게 해서 울타리 삼을 셈이었고 그 앞에 라일락이 꽃나무로 조경수 역할을 할 셈이었다.

  담장을 따라 배롱나무를 띄엄띄엄 심었다. 아치형 대문에는 능소화를 심엇다. 그리고 수돗가에는 모과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 모과가 탐스럽게 열리면 모과청을 담을 생각이다. 어설프게 심겨진 장미 사이로는 삼색 버드나무라고 불리우는 화이트핑크 셀릭스5주 정도 심었다. 셀릭스의 끝에는 아내가 강력히 원하던 수양벚나무도 심었다. 마당 한 가운데에 실외용 테이블과 의자도 가져다 두었다. 이제 심어둔 나무만 무럭무럭 자라준다면 완벽한 정원이 생긴 셈이다.

아치형 대문을 설치하고 아치를 따라 능소화가 자라도록 심어두었다.

  햇빛이 내리쬔다.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신다. 바람이 분다. 벚꽃 잎이 살랑이다가 바람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내와 내 마음도 녹아내린다. 강아지들이 햇빛에 쬐는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다. 이제 파고라가 가지고 싶어졌다. 파고라를 타고 자라는 등나무를 상상해 본다. 보랏빛 꽃의 향연들. 붕붕대는 꿀벌들, 나비들을 상상해 본다. 정원에 설치할 장소를 물색하다가 파고라까지 하면 너무 좁아질 것 같다.

  하지만 내 등나무는? 누구나 내 등나무 하나쯤은 가지고 싶, 나는 꼭 내 정원엔 등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파고라를 지으려니 너무 노동이었다. 담장공사를 셀프로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무언가를 짓는다니. 결국 코스트코에 있는 파빌리온을 하나 주문했다.

  아직 배롱나무엔 싹이 트지도 않았고 회양목은 종아리도 오지 않는다. 셀릭스는 아직 가지를 뻗지도 않았고 능소화도 소식이 늦는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고 계절 따라 나무들이 순서대로 꽃을 피워올릴 것이다. 그리고 새들도 좀 더 자주 찾아오겠지. 이제 자연의 경이로움을 가까이에서 하나씩 느껴볼 일만 남았다.

나만의 정원을 갖는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어쩌면 그것은 자연을 소유한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상일 뿐이겠지만.

. 나무를 심는다고 나무가 알아서 자라는 것은 아니다. 정원가꾸기의 꽃은 전정(가지치기)으로 수형을 잡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나무가 병들지는 않는지 병충해를 살피고 예방하고 물을 좋아하는 나무에는 더 자주 물을 주고 배수가 좋아야하는 곳엔 토양을 개선하고, 온도에 따라 서리를 맞으면 안 되는 나무들엔 보온을 해주는 등 여러 세심한 관심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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