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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27 : 담장(4)

by 구루퉁 2021. 3. 10.

 

 

 

  긴긴 겨울의 고민을 태풍급 바람이 한 번에 날려주듯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주문한 자재가 금요일에 도착할 거라는 말에 금요일 연차를 냈다. 그리고 목요일 저녁 퇴근 후에 터파기를 시작했다. 삽 자루 하나를 쥐고 잔디를 네모나게 잘라냈다. 낑낑거리며 잔디를 뜯어낸 후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삽이 푹푹 들어가줘야 하는데 찔러넣을 때마다 돌부리가 걸렸다. 반발력이 팔꿈치에 전해져 아팠다. 두 시간을 넘게 낑낑거리고 담이 될 자리를 파내고 나니 아내가 너무 애쓰지 말고 들어오란다. 그래, 돈 아끼려다가 병나면 병원비가 더 든다. 돈만 아끼지 말고 몸도 아껴 써야 한다

 

 

  다음 날 점심에 자재가 도착했다. 트럭 기사님께 영수증을 달라 하니 부가세 10%를 더 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거 법이 바뀐 게 언제인데 아직도 이렇게 현금가와 부가세 신고가를 달리하나.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추후에 집을 매매할 때 이런 공사대금들은 ‘양도소득세 공제’를 받을 수 있기에 영수증을 잘 챙겨놔야 한다. 해서 자재를 살 때 영수증을 잘 챙겨놨다. 하지만 일하는데 말씨름하기 싫어서 현금만 주고 치웠다.

 

 

  어제 파둔 구덩이에 물과 시멘트를 믹스해서 부었다. 시멘트가 조금 굳고 나서 기초가 될 돌도 1단을 올렸다. 한 일도 없이 해가 졌다.

  3일 차, 우리집 공사 소식을 들은 처가에서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이 도와주겠다며 차로 두 시간을 달려오셨다. “구서방~ 나는 뭐 하면 되나?” 두 분도 이런 공사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사셨던 분들이다. 또한 도시에서 살아오신 분들이라 우리 부부가 둘이서만 담장을 쌓는다는 말에 깜짝 놀라 한달음에 달려오셨다는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이건 백지장 수준이 아니라 돌담이기에 한결 수월해졌다. 장모님이 점심엔 갈비탕과 저녁엔 소고기를 구워주셨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어른들을 모시고 공사를 한다는 것은 나도 해본 일이 없는 터라 어색했지만 두 분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처음에는 삐걱거리던 손발이 오후가 되자 서서히 맞기 시작했다. “3시 반이면 참 먹을 시간이에요. 전문 노가다꾼들도 이 시간엔 쉬니까 좀 쉬었다 하세요.”

  대학 시절, 종종 주말이 되면 인력사무소에 나갔었다. 당시 하루 일당 팔만 원, 수수료 떼면 칠만이천 원이 남았었다. 이틀을 일해서 십사만사천 원이면 일주일을 나고 대학 새내기였던 아내와 데이트도 할 수 있었다. 공사장에서 어깨너머로 본 일들을 떠올리며 일을 했다.

  한 포대에 40kg인 시멘트를 나르고, 하나에 12kg 정도 되는 돌을 나르고, 그 돌을 들었다 놨다 하며 수평을 맞추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3일 차가 지나갔다.

 

 

  4일 차가 되어 마지막 돌을 놓고 마무리를 했다. 처음에는 잘 될까 싶었지만 갈수록 담장이 태가 났다. “그럴싸해 보이네?” 마을 어르신들도 지나가며 칭찬 한마디씩 해주셨다. 아내와 나, 장모님과 장인 어르신은 우리가 해냈다는 마음에 뿌듯했다.

  사실 나는 주말마다 조금씩 담장을 쌓을 작정이었는데 두 분이 오신 덕분에 한 주 만에 끝나버렸다. 아내가 도와주면 한 달을 생각했고, 아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서 두 달을 생각했다. 그렇게 충청도의 느긋한 정신으로 천천히 해나갈 작정이었는데, 경상도의 정신에 휩싸여 후다닥 끝내 버리고 만 것이다. 넷이 하니 다르긴 달랐다. 처가 식구들과의 추억이 하나 더 늘었다.

  이제는 주말마다 메지를 넣어 채우고 나무를 심어 꾸미는 일이 남았다. 그리고 율무의 테스트가 남았다.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율무는 우리의 공사를 테스트해줄 것이다.

 

 

※ 장인어르신, 장모님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수평 맞추는 일이 너무 어려워서 셀프로 하실 분들은 꼭 기초 공사라도 전문가에게 맡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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