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담장은 나름 중요한 요소이다. 주택의 외관이나 첫인상을 결정하는 요소 중에 하나이며 보안을 담당하는 첫 번째 관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장이 있는 집과 없는 집의 가격 차이가 꽤 난다.
요즘엔 담장을 없애는 추세다. 1996년에 시작된 담장 허물기는 2012년 담장 안 하기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담장을 허물고 이웃과 마당을 공유하자는 의미였다. 도심의 부족한 주차공간을 담장을 허물면서 조금 해소시켜 보자는 의미도 있었다. 그런데 공간을 공유하는 개념이 범죄율 증가로 인해 다시 담장 쌓기로 바뀌어 가고 있다.
실례로 학교에 담장을 없애자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고 취객들이 심야에 들어와 고성방가하거나 고교생들의 음주, 폭력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학교가 다시 담장을 쌓기 시작하자 인근 아파트 단지들 또한 속속 울타리를 치고 있고 한다. 공공기관이면 모르되 사유지는 청소나 시설물 관리, 보안상의 이유로 울타리가 필요하긴 하다.
시골에서는 이 담장이 보안에 첫 번째 관문인 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시골로 이사를 하였더니 이웃집 어르신들이 불쑥불쑥 들어와 간섭하더라는 이야기를 온라인상에서 빈번하게 보았다. 우리 부부도 시골에서의 첫 집에서 담장 덕을 톡톡히 보았다. 당시의 집은 6인치 시멘트 블록으로 만든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담장 너머에서 말을 걸긴 했지만 불쑥불쑥 집 안까지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이 담장 덕분에 우리는 마당에 강아지들을 풀어둘 수 있게 되었다. 후추와 율무는 담장을 넘어 오는 고양이들과의 전쟁으로 바빴지만 그래도 실외 배변과 일광욕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율무 입장에서는 집 안의 작은 공간을 지키다가 마당까지 지켜야 하다 보니 좀 더 피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시에서 살 때보다 더 자유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지금의 집은 담장이 없는 집이다. 율무는 좀 더 집 지키기에 열심히 되어서 창밖으로 사람만 지나가도 짖어대기에 이르렀다. 근처의 집들은 대부분 조경석으로 예쁘게 정원을 꾸며둔 집이 많았다. 율무는 가끔 집 밖으로 달아나 다른 집에 가서 오줌을 싸고 오곤 했다. 그러다 보니 친해진 집들도 몇 곳 있기는 하다. 친해진 것과는 별개로 죄송스러운 일이었다. 남의 집 마당에 가서 오줌을 갈기고 오다니.
율무를 유독 좋아해 주는 이웃 중에는 율무와 똑 닮은 말티즈를 키우는 집이 있다. 별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강아지였는데 그 집에 가면 율무는 간식을 잔뜩 얻어먹고 별이와 신나게 노느라 아무리 불러도 오질 않았다. 율무는 틈만 생기면 탈출을 해 별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집 안까지 율무를 들이시는데 율무가 마킹까지 한단다. 얼마나 뻔질나게 갔으면 그집에 사는 고양이하고도 친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는 몇 번이나 간식을 가져다드리면서 죄송하다고 했다. 괜찮다고는 하시지만, 우리가 괜찮지 않았다.
결국, 담장을 짓기로 했다.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내가 출근을 하면 혼자 있을 프리랜서 아내를 위해, 그리고 후추와 율무가 좀 더 안전한 느낌을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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