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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23 : 노래방

by 구루퉁 2021. 2. 15.

  시골에는 은근히 가정용 노래방 기계를 가지고 있는 집들이 많다. 하다못해 마을회관에라도 하나쯤은 있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흥의 민족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마을에도 노래방 기계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두엇 되시는 것 같다. 종종 마을 행사 때나 개인적으로 노래방 기계를 서로 빌려 쓰시기도 하는 것 같다.

  처음 이 마을에 이사왔을 때 낮에 노래방 기계 소리가 들려왔다. ‘, 어르신들이 흥이 나셨구나.’했고, 저녁이 되자 이 노래방은 뒷집 어르신의 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거나하게 취하신 어르신들의 노랫소리, 창문을 닫으면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을 정도였다.

  저녁을 먹고 10시가 넘어가도록 노랫소리를 계속되었다. 아내와 나는 슬슬 뒷집에 이야기를 해야하나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까. 이웃이 서로 마음 상하지 않는 선에서 잘 말해야 할 텐데. 어르신들이 간만에 흥이 나서 노래를 즐기시는데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계속된다면 이웃으로서 뭔가 이야기는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할 무렵, 11시가 되자 노랫소리가 딱 끊겼다.

  이후로도 종종 쿵짝쿵짝 대는 노래방 소리가 들렸지만 11시만 되면 노래가 딱 끊겼다. 우리 마을엔 11시 룰이 있는 모양이다. 11시가 되면 마을이 조용해진다. 지인들이 놀러 와서 한바탕 놀다가도 11시만 되면 조용해진다. 하지만 상시 거주하는 집이 아닌 가끔 오는 집들은 11시를 룰을 잘 모른다. 11시가 넘어서도 고성방가를 일삼는 집들은 열이면 열 주말 주택으로 쓰거나 한 달에 한 두어 번 술을 사 들고 놀려고 내려오는 집들뿐이다.

  우리 집도 친구들이 놀러 오거나 가족들이 놀러 오면 11시 룰을 지킨다. 11시까지는 아무리 시끄럽게 해도 이웃 어른들이 불편해하지 않는 기색이다. 물론 11시 이후에도 특별히 조용히 해달라는 말을 하러 오는 이웃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11시까지는 꽤나 당당한 마음으로 마음 편하게 놀 수가 있어서 좋았다.

노래방 기계는 이동이 가능해서 작은방에 두었다가 2층에 두었다가 손님이 오면 거실에 내놓기도 한다.

  최근 나도 노래방 기계를 들였다. 업소용 노래방 기계. 인터넷에 검색을 하면 많이 나오는데, 업소용과 가정용의 차이는 크지 않다. 업소용과 가정용의 차이는 노래방 이벤트 등의 몇가지 기능과 노래방기계의 하드 용량 정도이다. 그런데 관리 차원에서는 가정용이 더 저렴하다. 가정용은 노래를 업데이트하는데 드는 비용이 업소용에 비해서 저렴하다. 출력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다. 앰프와 스피커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출력이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근마켓을 이용해 중고로 구한 터라 업소용을 가져오게 되었다. 인터넷 랜선을 물리니 전국노래방 이벤트 등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 중고로 구매하는데 판매자분이 부모님 선물인가봐요?’라고 말했다. 아내와 나는 빙긋이 웃으며 저희가 쓸 거에요!’라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도 집에 노래방 기계 하나쯤 두고 싶다.

이번 설 연휴에 아내와 단 둘이 잭콕을 마시며 후추, 율무에게 공연을 해주었다. ㅋㅋ

  퇴근 후 노래를 매일매일 불렀다. 8시에서 9시까지 1시간씩 노래를 부르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점점 노래를 잘 부르게 되기까지 했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재밌게 즐길 거리가 생기다 보니 지인들도 좋아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노래방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지인들의 노래방 욕구가 꽤나 상승했던 것도 있었다.

  연애 때 아내는 노래방을 싫어했다. 알고보니 노래 부르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특유의 어두침침한 분위기와 낯가림이 조금 있어 싫었다고 한다. 이제는 아내도 제법 노래방 기계를 쓴다. 이번 연휴 땐 아내와 둘이서 노래방 기계를 틀고 스트레스를 좀 풀었다. 들어주는 사람은 없고 두 강아지들이 열심히 노래를 들어주었다.

  한국 사람에게 노래방이란 무얼까. 잘은 모르겠지만 노래를 부르고 안 부르고는 삶에 있어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다. 아직 그 차이를 모른다면 산에 올라가서 시원하게 소리라도 한 번 질러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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