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들을 살펴보면 농가주택이 주를 이루는 마을이 있고, 전원주택이 주를 이루는 마을이 있다. 귀농하는 사람들은 주로 농가주택으로 들어가고, 귀촌하는 사람들은 보통 전원주택 단지로 들어간다.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대부분 그렇게들 한다. 농가주택은 대부분 오래된 마을로 수십 년 전부터 형성된 마을들이 많다. 하지만 전원주택 단지는 보통 십수 년 이내에 형성된 마을들이다. 부동산 업자들이 기획단지를 만들어서 분양하는 형식이다.
우리 마을은 은퇴자를 위한 마을이라는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마을 어르신들 말로는 8년즘 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2012년도에 마을이 만들어진 모양이다. 분양 당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고 하지만 아무튼 여기까지 왔다. 약간 어중이떠중이 느낌의 마을이다. 주택들은 다들 전원주택처럼 지어놨는데 마당보다는 텃밭이 큰 농가주택과 닮아있다. 어중간하다. 상시 거주하는 가구가 열댓 가구 정도, 주말주택으로 이용하는 가구가 네다섯 가구, 빈 집으로 둔 곳이 네다섯 가구, 집도 없이 터만 있는 곳도 있고, 아직도 분양하려고 새로 짓는 집도 있다. 그러니까 마을 집 중에 절반 이상은 비어있는 경우가 많고, 공터도 많다. 나는 이 어중간한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이곳에 자리를 잡은 다른 이유들도 많다.
전원주택으로 갔다고 생각해보자. 이웃집이 정원에 무언가를 꾸미기 시작하면 우리집은 너무 없어 보이게 된다. 그래서 우리 집 정원도 덩달아 꾸미게 된다. 그리고 이 현상은 전원주택단지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땅값, 집값을 상승시키는 요인이 된다. 나중에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라면 투자라 생각하고 마음 껏 꾸밀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아직 30대, 모아놓은 돈도 물려줄 자식도 없다. 내가 꾸미고 싶은 대로 꾸미고 내가 짓고 싶은 작물만 텃밭에 짓는다. 마을 사람들도 텃밭에 뭘 심든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농촌의 농가주택이었다면 마을 사람들이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요즘엔 뭘 심어야하고 줄을 이렇게 맞춰서 심어야 하고, 아이고 생각만해도 머리가 아프다.
우리 이웃들은 이 어중간한 만큼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산다. 어떤 집은 전원주택처럼 예쁘게 꾸며놓고 주말마다 놀러오고, 어떤 집은 마당을 모조리 데크로 만들어 팬션처럼 쓰기도 한다. 어떤 집은 마당 대신 텃밭 밖에 없는 집도 있다. 내가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집은 대문도 없이 사방에 나무를 심어놓은 집이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마다 헤드랜터을 끼고 뚝닥거리는 집인데, 우리가 이사를 올 때는 분명 대문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는 그 자리에 나무 세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새들을 싫어해서 한 번씩 폭죽을 터트리는데 그렇다고 과실수가 많은 집도 아니다. 예상컨대 나무들을 이쁘게 키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팔 요량인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이웃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기에 크게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곳이라 나는 이 마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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