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대나무
시골에 내려와서 첫 집에는 밭 뒤편으로 대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병풍처럼 집을 감싸고 바람이 불면 쏴아아 하고 마음이 시원해지는 청량감 있는 소리를 내는 그런 대나무들 말이다. 대나무들 뒤로는 야산이었는데 어느 집안의 선산인지는 모르겠지만 군데군데 굉장히 오래된 무덤들이 있었다. 대나무가 이 무덤들을 가려주어 무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냈다. 무덤을 발견한 건 이사 온 뒤 1년이 지난 시점에 집 뒤편 산이 궁금해서 이리저리 오르내리다 우연히 발견했을 정도니까.
대나무 일부가 우리집 경계구역으로 넘어와 자랐다. 텃밭에 토마토 같은 지지대가 필요한 작물들을 심을 때 그 대나무를 베어다가 지주대로 세울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아했다. 닭장 문도 대나무를 베어다가 만들어 썼다. 텃밭으로 강아지들이 넘어가지 못하게 울타리도 세울 수 있었다. 대나무의 활용은 무긍무진했다.
문제가 생긴 것은 다음 해였다. 봄이 되어 텃밭을 정리하는데 텃밭에 죽순들이 엄청나게 올라온 것을 발견했다. 텃밭의 가장자리를 따라 죽순들이 얼굴을 내밀어 귀엽기도 했다.
봄맞이로 텃밭에 비료를 뿌리고 관리기로 흙을 갈아엎기 시작했다. 그런데 관리기가 한 번 씩 턱턱 걸린다. 미니 관리기라도 왠만한 돌멩이들은 관리기가 혼자 뽑아낼 정도로 힘이 쎈 녀석이었기에 큰 돌멩이가 있나보다 싶었다.
삽을 들고 와서 그 자리를 팠다. 대략 50cm 정도 팠던 것 같다. 기다란 대나무 뿌리가 나왔다. 뿌리를 잡아 당겨보았지만 50cm 정도로 땅에 뭍혀있는 대나무 뿌리는 요지부동, 뿌리 중간을 잘라서 한쪽 끝을 들어올려 보았지만 흙 무게 때문인지 뽑혀져 나오질 않았다. 후우, 대나무의 뿌리는 수평으로 자란다.
뿌리를 따라 땅을 팠다. 세로로 길게 이어진 뿌리줄기마다 죽순들이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들이 보였고 3m 가량 50cm 깊이로 땅을 팠더니 초봄의 쌀쌀한 날씨에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다음 날에도 뿌리를 따라 땅을 팠다. 다른 방향으로 가는 두 개의 뿌리가 발견됐다. 계속해서 뿌리를 따라 땅을 파다 보니 밭이 엉망이 되었다. 밭의 가로 세로 대각선 이리저리로 대나무 뿌리가 침범해 있었던 것이다. 포크레인이 들어오기엔 좁은 골목, 미니 포크레인도 있었지만 50평도 안되는 텃밭 하나 하자고 포크레인까지 부르려니 돈이 아까웠다.
삼사 일간 사투를 벌이니 이리저리 파헤쳐진 흙으로 상처뿐인 텃밭만 남았다. 대나무가 징그럽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대나무를 농약으로 죽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텃밭 너머는 내 땅이 아니고 심지어 월세로 살던 기간이었다. 결국 밭 경계를 따라 뿌리를 끊어냈지만 대나무는 계속해서 침범해왔다. 그 뒤로 대나무만 보면 이가 갈렸다. 심지어 ‘진격의 대나무’라는 별칭을 지어주고 그에 관한 이토 준지 풍의 공포 단편소설까지 썼을 정도였다.
그 후로 시골에서 집을 살 때 대나무가 가까이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대나무가 가까이 있는 땅은 못쓰는 땅이라 생각하거나, 포크레인으로 대나무를 밀 수 있는지, 그 비용을 추가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사는 집은 근처에 대나무가 없어서 때때로 아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진격의 대나무, 그 활용도는 무긍무진 하지만 때론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니 주의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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