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만들고 그 길을 걷는 상상을 한다. 길 양 옆으로는 잘 가꿔진 수풀들이 회양목이나 베롱나무, 라일락 등이 피고 지는 길을 걷는 상상. 버드나무 잎이 바람에 날리거나 정원 가운데 파고라를 타고 자라는 등나무에서 피는 등꽃 향기들. 꿀벌들이 붕붕대고 작은 새들이 벌레를 잡아가는 정원. 그 곳의 정원에는 벽돌로 바닥을 치장한 길이 있다.
대문까지 이어지는 길이 삐뚤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퇴사를 하고 최근 시간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대문까지 이어지는 길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사실 컨테이너를 하나 들이기로 해서 정비가 필요했다. 길을 만드는 일은 이제 없을 거라 생각했었지만 다시 노동이 시작되었다.
조적용 형광실을 샀다. 수평 수직은 잘 모르겠지만 양쪽으로 팽팽하게 잡아당겨 표시해 두면 곧은 길은 완성되리라. 실 위에 수평계를 대충 올려보고 공기방울이 정 가운데로 오게 끔 줄 끝을 조정한다. 집 앞 현무암 데크에서 이어지는 길이라 현무암 데크와 평탄하게 수평을 맞춰 본다. 이게 잘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눈으로 보기에 나쁘지 않다.
대문까지 길을 곧게 잡으니 전보다 길이 넓어진다. 뜯어내야할 잔디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잔디 뜯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다. 얼기설기 저들끼리 서로를 붙잡고 흙을 움켜쥐고 있는 탓에 흙 째로 퍼 올려야 하는데 생각보다 깊게 파서 퍼 올려야 하기에 무게가 상당하다. 아무튼 잔디를 다 뜯어내니 이제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벽돌을 사러간다. 벽돌이 종류가 참 많다. 하얀 녀석도 있고 검은 녀석도 있고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놈, 페인트 방울 무늬가 들어간 것도 있다. 고벽돌 중에서도 적벽돌, 청고벽돌을 골랐다. 구멍 5개짜리 기다란 녀석으로.
내 차는 적재 가능한 무게가 450kg인데 벽돌 무게를 알수가 없어서 천천히 이동한다. 코너도 천천히 돌고 뒤에 차가 따라 붙으면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달린다. 다들 알아서 비켜 간다. 시골길이란 늘 그렇다. 다들 알아서 잘 간다.
벽돌을 차에 싣는 건 벽돌 파는 아저씨가 도왔는데 집에 오니 혼자 내려야 한다. 아내가 수업을 나가야 한다하니 시간 내에 내려야 하는 미션까지 생긴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원에 길을 만드는 일은 변수와 미션의 연속이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벽돌만 잘 배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벽돌을 하나씩 놓다보니 수평 잡기가 쉽지가 않다. 그제서야 도시에 살 때 연말이면 보도블럭 공사를 하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모래가 깔려 있어야 수평을 잡기가 쉽다. 이번엔 모래를 구해오는 미션이 생긴다.
모래를 어찌저찌 구했다. 플라스틱 통으로 열심히 날랐다. 헤링본 스타일로 벽돌을 배치하는데 길이 영 어색하다. 격자무늬로 간다. 일단 조금씩 배치를 해본다. 휘유~ 모서리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다. 벽돌을 잘라야 하는데 냉가 망치로는 모양내기가 쉽지 않다. 그라인더를 꺼내든다. 그라인더가 4인치라 벽돌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잘라낸다.
보도블록처럼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는 벽돌들이 아니다 보니 모래를 깔아도 그 위를 걸어보니 밀리거나 흔들렸다. 후우~ 이번엔 사이사이를 메워 줄 백시멘트가 필요한 모양이다. 어찌된 것이 집에서 작업을 하는데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도 어찌저지 마무리를 지었다. 컨테이너가 도착할 날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기에 빡세게 마무리를 지었다. 이게 맞나 싶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내 집에 내가 길을 만드는데 정답이 있을까. 그래, 내 집에는 내 스타일에는 정답이 없다. 튼튼함을 원하면 튼튼하게 하는 방법을 참고할 뿐이고, 스타일리쉬한 것을 원한다면 예쁜 길들을 참고할 뿐이다. 예산부터 원하는 스타일까지 모든 것이 다른데 정답이 있을리가 없다.
내 마음에 들면 장땡이란 말씀! (공사가 끝나고 내 마음에 안들면 어쩔 수 없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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